[곽흥렬 칼럼] 내 오지랖이 당신의 오지랖에게

곽흥렬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 <걸어가는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엑스선 사진에서와 같은 뼈대만 앙상한 몰골이, 회오리바람이라도 휘익 불면 앞으로 폭 고꾸라질 듯 위태위태하다. 생전의 자코메티 몸매 역시 바짝 마른 체구였다니, 어쩌면 스스로의 자의식을 예술에다 투영시키려 한 건 아니었을까. 꼭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대하는 것 같아 가슴에 찌르르 전율이 인다. 왠지 그와 동류의식이 느껴지면서 동병상련의 심정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갑년을 넘긴 이날 이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정상 체중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 숱한 세월 동안 살을 찌우려고 철철이 보약을 지어 먹는다, 시도 때도 없이 홍삼 엑기스를 들이마신다, 아침저녁으로 걷기운동을 한다……, 갖은 방법을 다 써봤지만 끝내 허사였다. 몸무게를 잴라치면 체중계의 눈금이 표준 체중을 한참 밑돈다. 

 

그리하여 몰골이 노상 사흘에 피죽도 한 그릇 못 얻어걸린 사람처럼 영 볼썽사납다. 그러다 보니 지인들로부터 “제발 살 좀 쪄라” 하는 말을 심심찮게 들어 왔다. 그럴 때마다 ‘누군 찌고 싶지 않아서 안 찌나?’ 하는 볼멘소리가 목젖까지 차오르곤 한다. 염려인지 충곤지, 아니면 비아냥인지, 그도 아니라면 측은지심인지, 아무리 곱씹고 곱씹어 보아도 그들의 속내평을 끝내 모르겠다. 

 

사람들, 특히 한국인들은 왜 그리도 남의 약점에 대해 가슴에 못이 박히도록 콕 찔러서 말을 내뱉는 것일까. 예부터 장애인들보고 ‘봉사’니 ‘벙어리’니 ‘귀머거리’니 ‘절름발이’니 하는 표현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써 온 것이 우리 민족 아니던가. 엉덩이가 무쇠솥 뚜껑만 하고 허리통이 우스갯소리로 ‘배둘레햄’인 고도 비만자에게, 생각 없이 그 뒤룩뒤룩한 군살 좀 빼라는 소리를 해댄다면 당자로서 어디 듣기 편하겠는가. 

 

내 오지랖이 당신의 오지랖에게 정중히 충고 한마디 건네고 싶다. 제발 타인의 신체에 대해서 그 불필요한 신경 좀 꺼 달라고. 그런 소득 없는 데다 관심 두고 있을 시간에 자기 스스로의 처지나 한 번쯤 헤아려 보라고.

 

자동차를 탈 때의 느낌을 두고 쓰는 ‘승차감乘車感’이라는 낱말을 익히 알고 있으리라. 그에 대비되는 표현으로 이제는 ‘하차감下車感’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 유행하는 형국이다. 자동차에서 내릴 때 주변 사람이 던지는 부러움에 찬 시선을 즐기고 싶다는 욕구를 만족시킨다는 뜻으로 생겨난 말이 하차감이라니, 이야말로 얼마나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인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이런 허접스러운 것에 휘둘리게 마련이다. 자기의 처지는 생각지 않고 그저 꼴사납게 으스대고픈 쓸개 빠진 정신 상태라니……. 이것도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결국은 남에 대한 쓰잘머리 없는 관심증에서 비롯된 우리의 일그러진 풍토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상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민족은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유전인자를 지닌 종족인 모양이다. “김칫국 먹고 수염 쓴다”라거나 “냉수 마시고 이 쑤시기” 같은 속담이 생겨난 것도 그저 우연만은 아닐 게다. 저나 잘할 일이지, 제 앞가림조차 제대로 못 하는 주제이면서 남의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참견할 만큼 오지랖도 넓다 싶다. 

 

그건 그렇고, 이런 현상도 어쩌면 하나의 독특한 문화라면 문화일 수 있으려나? 만일 문화가 분명하다면, 문화치고는 한참 급이 떨어지는 문화라고 욕을 얻어먹는대도 딱히 변명의 말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자코메티의 표정이 참 편안해 보인다.

 

 

[곽흥렬]

1991년 《수필문학》, 1999년《대구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우시장의 오후』를 비롯하여 총 12권 펴냄

교원문학상, 중봉 조헌문학상, 성호문학상, 

흑구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등을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받음

제4회 코스미안상 대상 수상

김규련수필문학상

이메일 kwak-pogok@hanmail.net

 

작성 2024.12.20 10:32 수정 2024.12.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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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