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의 역사칼럼] 『난중일기』에 기록된 지명 개연

윤헌식

충무공 이순신은 1597년 4월 도원수 권율 막하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고 권율이 주둔한 경상도 초계군(지금의 경남 합천군 초계면)으로 길을 떠났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충무공은 6월 2일 삼가현(지금의 경남 합천군 삼가면)에 이르렀고, 6월 4일에는 합천 읍치(지금의 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와 초계군으로 가는 갈림길에 이르렀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7년 6월 4일

 

12경에 합천 땅 고을에서 10리쯤 되는 곳에 이르니 괴목정이 있으므로 아침식사를 하고 더위가 혹독하여 한참 동안 말을 멈추었다. (합천 고을로부터) 5리 앞에 이르니 갈림길이 있었는데, 한쪽 길은 곧바로 군(합천군)으로 들어가고 (다른) 한쪽 길은 초계로 가기에 강을 건너지 않고 10리를 가자 바로 원수(권율)의 진이 바라보였다. 문보가 머무는 집에서 유숙을 하였다. 개연을 지나서 왔는데 기암이 천 길이고, 강물은 굽이지며 또한 깊고, 길도 잔도라서 위태로우므로 만약 이 험난한 곳을 막으면 만 명의 장정이라도 지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원문] 午到陜川地距官十里許 有槐木亭 朝飯 熱酷 移時歇馬. 行到五里前 則有岐路 一路直入郡 一路由草溪 故不越江而行纔十里 元帥陣望見矣. 接宿于文㻉寓家. 介硯行來 奇岩千丈 江水委曲且深 路亦棧危 若扼此險 則萬夫難過也.

 

​위 『난중일기』 기록에 언급된 합천군과 초계 갈림길은 내용의 정황으로 보아 지금의 합천군청 소재지인 합천읍 합천리 남부 지역을 끼고 흐르는 황강 남쪽에 있는 정양저수지 부근으로 보인다. 충무공은 그 갈림길에서 합천군 쪽이 아닌 초계군 쪽으로 나아가 '개연(介硯)'이라는 곳을 지나 도원수 권율의 진이 바라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위 기록은 '개연'이라는 곳을 '강물 옆 절벽 위에 있는 잔도(험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라고 묘사하였다.

 

​지금의 정양저수지에서 초계면으로 가는 길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개벼리길'이라는 지명을 찾을 수 있다. 개벼리길은 황강 옆 기암절벽에 있는 좁은 길로서 개 한 마리가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좁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구전이 전한다. 개벼리길은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경남 합천군 율곡면 문림리와 영전리 경계 부근에 있는 황강을 따라 위치해 있다.

 

개벼리 전경 - 자료 출처: 카카오맵 로드뷰

 

​개벼리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성해응의 『연경재전집』, 조긍섭의 『암서집』, 『1872 지방지도』의 「합천군지도」 등 여러 조선시대 문헌에 '견천(犬遷)'이라는 지명으로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우리나라 역대 지리지에서는 ‘물 언덕 돌길’을 ‘遷’으로 표현하고 구어로는 ‘벼로’, ‘벼루’, ‘비리’ 등으로 불렸다고 하므로(박병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遷’계 지명어의 쇠퇴에 관한 연구) '견천(犬遷)'은 구어로 ‘개벼루’, ‘개비리’ 등으로 읽힐 수 있다. 위 『난중일기』 기록에 언급된 '개연(介硯)' 또한 ‘介’를 음차로 보아 ‘개’로 읽고 ‘硯’을 훈차로 보아 '벼루'로 읽으면 '견천(犬遷)'의 구어와 거의 동일한 음가가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합천군」에 따르면 '견천(犬遷)'은 합천군과 초계군의 개가 다녀서 길이 되었다는 속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이곳이 워낙 기암절벽으로 경치가 좋았기 때문인지 조긍섭은 그의 문집 『암서집』에 견천(犬遷)이라는 제목의 시를 수록하였다.

 

​『난중일기』의 같은 달 26일 일기는 개벼리를 '견연(犬硯)'으로 기록하였는데, '犬'과 '硯'을 모두 훈차로 읽으면 '개연(介硯)'과 마찬가지로 '개벼루'로 읽힌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7년 6월 4일

 

황 종사관(황여일)이 견연(犬硯) 강가의 정자로 갔다가 돌아갔다.

 

[원문] 黃從事徃犬硯江亭而還去.

 

​『난중일기』에 나타난 지명 개연(介硯)/견연(犬硯)은 순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음차/훈차 표기한 사례로 이해된다.

 

[참고자료] 

한국고전종합DB,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합천군(陜川郡)」

한국고전종합DB, 성해응(成海應)의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권44, 「지리류(地理類)」-「동수경(東水經)」-「낙동강(洛東江)」

한국고전종합DB, 조긍섭(曺兢燮)의 『암서집(巖棲集)』 권2의 「시(詩)」-「견천(犬遷)」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872 지방지도』의 「합천군지도(陜川郡地圖)」

박병철, 『어문연구 제40권 제1호』, 「『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나오는 ‘遷’계 地名語의 衰退에 관한 硏究」, 2012, 한국어문교육연구회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5.01.17 10:42 수정 2025.01.1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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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