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련이 피는 날은 비가 내리지 않아야 제격이다. 하얀 목련이 더욱 그러하다. 어차피 꽃잎이 지는 순간은 추하지만 비를 맞아 누렇게 변해 있는 하얀 목련은 더욱 가엾다. 비를 맞은 하얀 목련꽃은 이 세상의 모든 쓸쓸함을 혼자 지고 있는 듯하고 외로움에 지쳐 고개를 떨군 모습이다. 비를 맞아 자목련이 된 것은 아니겠지만 비가 내려도 그 빛깔이 퇴색하지 않는 것은 자목련이다.
봄에 피어나는 봄꽃들이 어디 목련뿐이겠냐 만은 그 소담스러움을 당해낼 꽃은 없을 것이다. 한쪽 방향으로만 고개를 젖히는 습성 탓에 피어있는 모습들이 질서정연하다. 우아함으로 말하자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안방마님이다.
어느 해였던가,
평소 가깝게 지내는 선배 한 분이 어디 가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예쁘다 하여 아니 갈 수 없어서 갔더니 그곳은 인산인해였고 발부리에 사람 발만 걸릴 뿐 꽃구경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또한 배꽃이 절정이라 하여?이화에 월백하자했지만, 그날 밤에는 비가 몹시도 내리는 날이어서 과수원집 대청마루에 앉아 비에 젖어 떨어지는 꽃잎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다가 왔다.
봄이 한창 무르익은 어느 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잡아 영덕군의 지품마을로 복사꽃을 보러 갔을 때에는 제대로 꽃을 보았다. 온통 분홍빛 물감으로 채색된 그림이었다. 마을로 들어서는 비탈진 산허리에서부터 물감을 뿌려대고 있었다.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는 말이 없어도 향기와 아름다움에 취해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니 그 밑에 자연히 길이 생긴다.’ 는 말대로.
올봄에 목련이 피면 시골집으로 꽃구경 오라는 친구가 있다.
그 아래에 멍석을 깔아 두겠다고 한다. 술은 준비해 둘 터이니 바람에 휘날리는 하얀 꽃잎을 보며 안주로 삼으라 한다. 술기운이 올라 거나해지면 꽃잎을 스쳐 나온 봄바람으로 머리를 식히고 떨어진 꽃잎을 주워 숟가락으로 쓰라고 한다.
몇 년 전 친구 집을 찾은 그날, 하얀 목련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해가 넘어간 지 한참이고 초롱초롱한 별빛만이 어둠을 파고들고 있었다. 꽃봉오리는 통통하게 물이 올라 풍만함 그것이었다. 순백의 하얀 목련꽃들은 두 그루가 쌍을 이루어 서로 마주 보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꼿꼿이 서 있는 꽃잎인가 했더니 그 옆에는 아침햇살에 겨우 눈을 부스스 뜨는 갓난아기처럼 해맑은 꽃망울도 있다. 허리 굽힌 무거운 꽃봉오리가 있는가 하면 꽃피기가 부끄러워 숨어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갓 생긴 꽃망울도 있다.
바람이 스쳐 가니 너울거림이 부드럽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실린 내음은 진한 향기로 다가온다. 꽃잎이 풍성하니 여유로움이 있다. 한 잔의 술에 안주 빛은 더욱 하얗게 변해가고 바람결에 떨어진 꽃잎으로 바람 국물을 담아 마시니 청아하기 이를 데 없다.
목련꽃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꽃은 아니다.
‘나 피었다?고 소문을 내고 거만을 떠는 꽃은 더욱 아니다. 단지?이렇게 피었노라?고 보여 줄 뿐이다. 담벼락 너머로 그 하얀 속살을 드러내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 들어갈 뿐이다. 못내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을 가슴에 품은 채 이승을 떠난 여인의 애절한 향기가 묻어나는 목련꽃.
미완성으로 끝난 사랑이 머물러 있는 북쪽으로만 향해 꽃망울을 터트린다는 슬픈 전설을 가진 목련꽃. 하지만 이 세상에 예쁜 꽃잎으로 다시 태어나 풍요로운 달빛을 품어 눈에 어우러지니 그 영롱한 빛은 끝 가는데 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나의 눈이 부시도록 그 빛은 찬란하다.
하얀 목련꽃의 하늘거림은 보송보송한 솜이불을 깔아 놓은 듯하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