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남자로 산다는 것

고석근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 공광규, <소주병> 부분  

 

 

어릴 적, 아버지는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시면 자주 밥상을 뒤엎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말없이 다시 밥상을 차렸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밥상을 뒤엎으려는 아버지의 팔을 꽉 잡았다. 아버지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더니 그대로 주저앉으셨다. 그 뒤로는 아버지는 한 번도 밥상을 뒤엎지 않았다. 수염이 거뭇거뭇 나고 목소리가 굵어지는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옆집 친구네 집에 가는데, 골목에 아버지가 서 계셨다. 흡사 검은 나무 한 그루 같았다. 너무나 쓸쓸해 보였다. 나는 조용히 아버지 곁을 지나쳐 갔다. 지금도 그때의 아버지 모습이 흑백 사진처럼 내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이 시대에 남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꼭꼭 숨기고 살아간다. 그들의 철칙은 ‘남자는 울면 안 돼!’이다.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면, 삶 전체가 망가진다. 물질적으로 잘 살건 못 살건, 삶이 지리멸렬해진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 혼자 속으로 삭이지 말아야 한다.

 

남자들의 술잔에는 눈물이 반이라고 한다. 그들의 노년은 너무나 쓸쓸하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5.02.27 07:06 수정 2025.02.27 08:0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2일
2025년 4월 12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