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인간로드] 밝은 동쪽에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

전명희

나는 이천팔십이년 전 인간 동명성왕이다. 하늘신의 아들인 아버지 해모수가 오룡거를 타고 연못에 내려오다가 호수에서 놀고 있는 세 명의 어여쁜 처녀를 보고 반했다. 두 처녀는 집으로 돌아가고 강의 신 하백의 딸인 어머니 유하만 남아 아버지 해모수와 사랑에 빠져 나를 임신했다. 그러자 외할아버지 하백이 노발대발하여 어머니를 동부여로 귀양보냈다. 동부여의 금와왕이 어머니를 불쌍하게 여겨 거두어 주셨는데 햇빛이 어머니를 계속 비추는 기이한 일이 생기더니 마침내 큰 알을 낳았다. 

 

금와왕은 불길하게 여겨 그 알을 개와 돼지에게 주었으나 먹지 않았다. 그래서 길에 버렸더니 소와 말도 알을 피해서 가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 다시 새들의 먹이로 주었다. 하지만 새들은 오히려 자기 알처럼 품어주었다. 금와왕은 알을 도끼로 내려쳐 깨려고 했지만 실패해 하는 수 없이 다시 어머니에게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알을 따뜻한 곳에 두고 정성스럽게 돌보았다. 그러자 음력 4월에 알에서 껍데기를 깨트리고 내가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알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동부여는 너른 평원이 펼쳐진 풍요로운 곳이다. 백두산 천지에서 맑은 물이 흐르고 흘러 내려오다가 송화강이 되어 흐르는 곳에 어질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나는 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동부여의 기상을 이어받아 튼튼한 몸을 지녔으며 영특하고 지혜롭게 성장했다. 일곱 살 무렵에는 활을 직접 만들어 쏘았는데 쏘는 족족 백발백중이었다. 활을 잘 쏜다고 사람들은 주몽으로 불렀다. 내 속에 흐르는 전사의 피가 나를 강한 인간으로 만들어 어떠한 어려움도 다 극복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나를 거두어 준 금와왕에게는 일곱 왕자가 있었다. 그의 큰아들 대소는 내가 남달리 영특하고 활을 아주 잘 쏘니까 나라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해 제거함이 옳다는 의견을 냈으나 금와왕은 큰아들의 말을 무시하고 나에게 말을 기르도록 했다. 나는 날랜 말에게는 먹이를 적게 주어 마르게 하고 둔한 말에게는 먹이를 많이 주어 살찌게 했다. 금와왕의 큰아들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자 어머니가 멀리 도망가서 큰일을 도모하라고 하셨다. 나를 따르는 오이, 마리, 협보와 도망치다가 강에 도착했지만 건너갈 배가 없었다. 나는 강을 향해 소리쳤다. 

 

“나는 황천(皇天)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강의 신 하백(河伯)의 딸이다. 나를 위해 갈대를 엮고 자라를 띄워라!”

 

그러자 강에서 자라와 물고기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나와 친구들은 무사히 강을 건너 군사에게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고향을 떠났으니 남의 땅에서 나그네로만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새로운 국가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모둔곡에 이르렀을 때 삼배옷을 입은 사람과 기운옷을 입은 사람 그리고 수초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 그들에게 새로운 성씨를 주고 규합하여 새로운 땅으로 새 역사를 만들기 위해 긴 여정을 시작했다. 마침내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지세가 단단한 땅 졸본에 도착했다. 아직 궁궐을 지을 여력이 없어 초막을 짓고 살았다. 

 

졸본의 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는데 왕은 나를 보통 사람이 아님을 단박에 알아보고 둘째 딸을 주어 아내로 삼게 했다. 얼마 뒤 왕이 죽었다. 나는 졸본의 왕위에 올랐다. 내 나이 스물두 살이었다. 나는 점차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북부여에 계신 어머니는 비둘기 한 쌍에게 보리씨를 물려서 보내 주셨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보리씨는 장차 나라를 세우고 부강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므로 나는 어머니께 마음속으로 깊이 감사드렸다. 북부여에 있던 첫 부인 예씨와 아들 유리를 불러들여 정비로 삼고 태자로 책봉했다. 곧이어 둘째 왕비 소서노는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 

 

나라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터를 닦고 성을 쌓았다. 사람들은 나의 덕망과 지도력을 알아보고 모여들었다. 백성들이 많아지니 경제도 높아지고 사회도 안정이 되어 갔다. 이제 때가 되었음을 온 천하에 알렸다. 나는 이제 이 땅에서 새로운 국가를 세워 고구려라고 이름을 정하고 온 천하에 선포했다. 국가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대대적인 영토확장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우선 변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변방에 살고 있던 말갈족 바락을 평정하고 말갈족이 더 이상 우리 국경을 넘보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훈강 상류에 있던 송양국의 왕 송양에게 활쏘기 대회를 하자고 제의했다. 이에 흔쾌히 허락한 송양은 활쏘기 대회에 참가했다. 나는 가뿐하게 송양을 이기고 항복을 받아냈다. 그리고 ‘옛 땅을 회복했다’는 뜻의 ‘다물’로 이름을 바꾸고 그곳에 송양을 우두머리로 삼았다. 2년 뒤 4월에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7일 동안 빛을 구분하지 못했으며 그해 7월에 궁궐과 성곽을 지었다. 6년 뒤에 백두산 남동쪽에 있는 행인국에 오이와 부분노를 보내 정벌하고 성읍으로 삼았다. 또한 개마대산 동쪽에 있는 북옥저를 우리 고구려에 흡수시켜 나는 그들을 어질고 지혜롭게 다스리며 지도력을 펼쳐나갔다. 

 

나는 성은 고 씨요 이름은 주몽이며 고구려를 세운 동명성왕이다, 이제 내 명이 다해가는 것을 직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아들 유리를 적자로 인정하고 나의 통치 기술과 지혜를 전수하여 고구려를 잘 다스릴 것을 당부했다. 나는 가을로 접어들어 바람이 산산이 부는 9월에 39세로 생을 마감했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5.03.17 11:39 수정 2025.03.1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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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