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아름다운 여인의 몸매

김태식

몇 년 전이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텔레비전을 통해 방송되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이즈의 환상적인 몸매를 갖췄다고 칭찬을 한다. 세련된 메이크업과 수영복 차림이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도 예쁘고 환상적인 자태임에 틀림없다. 입상을 위해서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경쟁이 심하다.

 

하지만 배를 만드는 조선소에는 이보다 더 치열한 경연장이 있다. 어둠과 먼지가 자욱한 신조선의 밀폐된 공간에서 여성의 아름다움 이상을 뽐내는 여인들이 있다. 일몰을 덮는 석양 같은 먼지 속에서 오체투지를 불태우는 가을날의 고추잠자리 같다.

 

머리에는 안전모를 썼다. 비닐 옷을 걸쳐 입었고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걷기도 힘들 정도의 개인보호구를 갖춰야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성 근로자들도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마음이 어디 없겠는가? 이분들도 분명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인이니 말이다. 

 

얼굴에는 페인트가 묻어 있는가 하면 옷에도 먼지와 페인트를 비켜 갈 수가 없다. 안전 용구를 착용하였으니 몸은 천근만근으로 무겁다. 그래도 그 여인들의 걸음걸이는 미스코리아 후보자를 능가할 만큼의 단아한 모습이다. 

 

반반한 얼굴의 윤곽이 없어도, 잘록한 개미허리가 아닐지라도 훤칠한 키가 아니고 늘씬한 각선미는 아닐지언정 어찌 아름답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모르긴 해도 그녀들은 정녕 성형외과 의사의 수술을 받지 않은 얼굴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배를 성형하는 의사와도 같고 화장을 해 주는 메이크업 전문가다. 그녀들의 빗자루가 스쳐 지나가면 바닥은 깨끗한 피부가 된 것처럼 매끈해지고 붓끝이 닿으면 배는 예쁜 색깔의 옷단장이 되니 그렇다. 그녀들의 손길은 마치 억새밭을 인두질하는 바람 같다.  

 

배를 만드는 조선소에서 배의 밑바닥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고 그라인더 기계로 여기저기를 갈아야 이들 여성근로자들에게 돈이 주어진다.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는 페인트칠을 하는 여인들의 몸매는 윤곽이 뚜렷하다. 조선소의 광야에서 일하는 여인들의 건강미가 넘쳐난다.

 

빗자루로 쓸어 모은 쓰레기 더미 속에 자식들의 대학 등록금이 녹아있다. 사랑스럽고 예쁜 손주들의 용돈이 자신들의 지갑에 쌓이는 기분을 즐겨 가며 열심히 일을 한다. 혹은 몸져누워 있는 사랑하는 남편의 병원비가 주어지기도 할 것이다. 보다 더 넓은 둥지를 마련하기 위한 적금통장이 불어나는 재미를 만끽하는 여성 근로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잠시 커피타임을 이용해서 배의 통로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비록 호수가 보이고 널따란 숲이 보이는 찻집은 아닐지라도 마시는 모습은 여유가 넘쳐 흐른다.  

 

남자 용접사들이 만들어 놓은 파이프의 마무리 다듬질을 하는 여성들도 있다. 검사를 하는 동안 공구를 들고 작업복을 껴입은 채 언제나 대기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도 아름답다. 지적 사항을 말하기 무섭게 다가와서 쇳조각을 갈아내고 다듬는 것을 보노라면 위로와 격려 외에는 할 말이 따로 없다. 

 

두꺼운 쇠를 녹이는 용접을 직접 하는 여인들도 간간이 있다. 보안경을 쓰고 용접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을 달래며 쇳조각들을 붙이는 광경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숨 고르기를 하느라 짧은 시간의 휴식 시간에 안전 보호구를 벗을 때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땀방울은 삶의 보람을 안겨준다. 힘든 작업 뒤에 비치는 해맑은 얼굴은 그 어느 여인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십이월 노루 꼬리 그림자도 잘린 오후에 땀이 저렸던 얼굴에는 화장기라고는 없다. 저녁달이 눈썹을 내밀고 달빛이 바람을 거느리는 시간이 되면 하루 일과를 성실하게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그녀들의 옷차림은 헐렁한 외투에 청바지 차림이다. 선박검사를 하는 선주 감독인 나는 여태껏 이보다 더 예쁜 여인의 외모를 본 적이 없다. 땀방울이 화장품을 대신하고, 상기된 얼굴의 모습이 건강해 보여서 좋다. 퇴근 후에 집으로 빨리 돌아가서 식구들의 먹을거리를 준비하려는지 귀가를 서두르는 모습도 아름다울 뿐이다.

 

수영복을 입고 무대 위에서 뽐내는 여성만이 아름다운 것일까? 예쁜 투피스 정장을 입은 여인만이 눈부신 아름다움을 가졌을까? 하이힐을 신고 공주 걸음으로 가는 것만이 단아한 것일까? 예쁜 옷을 입고 차를 마셔야만 귀부인이 되는 것일까? 

 

무대가 아닌 살아 있는 삶의 현장에서 작업복을 입은 여인이 훨씬 아름답다. 투피스보다 페인트가 묻은 비옷을 입은 여인이 더 눈부신 모습이다. 하이힐 대신에 안전화를 신고 허리춤에 페인트 통을 달고 걸어가는 여인의 자태가 더욱 예쁘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5.05.20 11:11 수정 2025.05.2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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