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로 칼럼] 불안한 하늘을 비행하며

임이로

또래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한국의 20대 중후반,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어 방구석에서 홀로 골몰하던 시간이 길었던 내겐 어쩐지 외부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 자체가 불안한 일이었다. 이불 밖은 위험해.

 

방구석 이불 속에 숨어서, 창밖을 바라보면 아파트 숲과 창틀 사이로 쪼그만 하게 고개를 내민 조각하늘을 바라보는 일을 좋아했다. 방안에 빛이 들지 않아 회색 지대가 되기 십상인데도, 하늘 조각은 푸르를 때가 많았다.

 

... 그래도 이불 밖은 위험해.

 

사회성에 자신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격이라, 바깥 세계의 내 연극 같은 모습과 홀로 있을 때 내 미숙한 모습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여전히 내겐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도 무사히 사회생활을 마친 모든 이들을 존경한다. 나는 아직도 정말 적응이 안 된다. 적응이란 걸 할 수나 있을까? 나는 좀 힘들지도?

 

이런 잡생각을 하며 오늘도 난 흠씬 불안해하며 스마트 폰만 시니컬하게 바라보고 있다. 같이 사는 동생은 불안에 떠는 내게 혀를 내두르며 매번 말한다. ‘불안도 습관이야!’.

 

맞아. 그렇지만 불안해. 난 영원히 불안할 거야. 불안하기 때문에 불안할 테지.

 

최근 해외에 학술대회 발표가 있어서 미국에 다녀왔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좋아하는 비행기를 마음껏 탔는데. 공항 주변으로 뻗은 넓은 활주로를 시원하게 내달리며 이내 이륙하는 동력체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생애 처음 해외 학술대회 발표를 준비하며 시달리던 불안한 몸과 마음이 안정되었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저 비행기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왜 굳이 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땅이 아닌 하늘로 발돋움을 하기를 선택했을까.

 

오랜만에 만나는 미국의 학회 사람들과 낯선 외국인들 사이에서 연구하는 동료들과 타지를 여행하며, 그러니까 사실 본심은 방구석에 당장 숨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철저히 이방인이어야 했던 미국에서의 낯선 시간을 보내며, 어쩐지 한국에서 타고 온 그 비행기가 생각이 났다.

 

열심히 활주로를 달려 이제 막 비행을 시작하였으니, 붕 뜬 몸은 불안할 수밖에.

삐삐- 기상 악화.

 

혼자 두텁게 쌓아온 단단한 자아는 외부 세계를 만나면 쉽게 무너진다. 아니, 무너뜨려야 한다. 나는 내 아집에 사로잡힌 글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시간은 내게 그런 시간이었다. 내 아늑하고 초라했던 방구석을 떠나는 그런 시간.

 

나는 타인을 만나면 타인의 불안을 먼저 목도한다. 그것은 정말 괴롭고 힘든 일이다. 불안에 떨리는 눈동자를 마주 보는 일은, 무엇보다 내가 불안해지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일이었다. 감정은 쉽게 옮으니까. 그것이 쉽지 않아서, 사람들 속에서도 방구석같이 조용한 시간과 공간만을 오랫동안 찾아 헤맸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문득 아무렇지도 않게 미국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근사한 것들을 구경하러 다니는 뻔뻔한 내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지나치게 불안했지만, 꽤나 괜찮았다. 그래, 즐거웠다.

 

귀국을 위해 한국으로 향하는 마지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륙하는지도 모르고 고단한 잠에 빠져들며 생각했다. 오래전 고향에서 방구석에 누워서 바라본 조각하늘을 이제는 내가 훨훨 날고 있구나. 이제는 조각이 아니라,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광활한 구름 위를.

 

날 이토록 하늘로 쏘아 올린 동력은 다름 아닌 내 불안이었구나.

 

노을이 내리쬐는 활주로를 내달리는 비행기의 뒷모습이 낭만적인 것은, 비행기는 언젠가 하늘을 날아오를 거라는 기대와 희망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대와 희망을 직접 실현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안’을 동반한다. 노을을 향해 하늘 너머로 뻗어가는 일은 반대편 하늘엔 어둠을 드리우기도 하는 일이다.

 

인간은 상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상상하는 만큼 불안해한다는 빅 히스토리의 박문호 박사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그래, 중력과 공기 저항을 돌파하며 나쁜 날씨에 기어코 뛰어드는 일은 정말 불안한 일이 아닐 수 없을 테니. 내가 상상한 세계를 향하여.

 

이제는 하늘이 된 내 불안을 사랑한다. 오늘도.

 

 

[임이로]

시인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시집 <오늘도 꽃은 피어라> 

메일: bkksg.studio@gmail.com

 

작성 2025.05.23 11:24 수정 2025.05.2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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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