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왜 자꾸 누군가를 기다릴까. 정치를 바꿔줄 사람, 상처를 치유해 줄 지도자, 혼란을 수습할 구원자. 리처드 바크의 『환상: 억지 메시아의 모험』은 이런 기대의 본질을 되묻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억지 메시아’ 도널드 시먼드는 사람들이 자신을 맹신하려 하자 결국 자리를 내려놓는다. 그가 말하길,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할 존재를 원하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다.”
이 말은 단지 영적 자각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오늘의 정치와 감정의 풍경을 찌르는 통찰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감정을 따라가고, ‘누군가’의 판단에 감응하며, ‘누군가’의 언어로 정치를 소비한다. 감정은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정치가 감정의 회로를 설계하고, 언론과 플랫폼이 감정의 흐름을 조율한다.
감정은 단지 개인의 감상이 아니다. 새라 아메드가 말했듯이, 감정은 사회를 배열하는 정치적 장치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누구를 경멸하며, 언제 자긍심을 느껴야 할지를 배우며 살아간다. 그것이 감정정치의 힘이다. 이 힘은, 사람들이 ‘감응하지 않도록’ 길들이는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감응하지 않음, 무관심, 피로, 냉소는 사회적 학습의 결과다.
『환상』이 말하는 “현실은 자발적으로 선택된 환상”이라는 문장은, 이 감정정치의 현실을 다시 보게 한다. 사람들은 종종 현실을 바꾸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감응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실패한다. 그 결과, 우리는 여전히 무력한 감정의 소비자이자, 타인의 통제를 내면화한 주체로 살아간다.
그러나 바크는 말한다. “이 환상은 당신이 만들었고, 당신만이 걷어낼 수 있다.” 메시아는 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감응하는 존재로서의 메시아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정치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감응의 윤리에서 시작되며, 그것은 위임될 수 없다. 감정은 외주화될 수 없고, 공감은 대행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도자가 아니라, 감응의 감각을 회복하는 시민들이다. 감정의 주체성을 되찾는 이들, 타자의 목소리에 책임 있게 반응하는 이들, 환상을 걷어내고 스스로 질문하는 이들. 메시아는 오지 않는다. 그 자리엔 언제나 깨어있는 시민들이 있었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