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의 차이나타운을 지나가니 귀에 익은 중국 노래가 들려온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내가 몇 년 전 중국에서 잠시 파견 근무할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청아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되새길 여유를 가지니 금세 기분 전환이 된다.
1995년의 어느 날, 노래 잘하고 얼굴도 예쁜 여자 가수가 갑작스럽게 심정지 상태로 세상을 떠났다. 1953년에 태어나 42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의 조국 대만은 물론이고 본토 중국 대륙에서도 그녀를 애도하는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적당한 키에 풍만하고 육감적인 몸매를 가졌는가 하면 뛰어난 가창력과 세련된 무대 매너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여인이었다. 평소에 벌어들인 많은 돈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돌 봐주었다는 얘기는 그 여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대변해 준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덩리쥔이다. 일본에서는 ‘테레사 텡’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21세의 나이에 일본에서 신인 가수상을 받았는가 하면 27세의 나이에는 중국계 가수로서는 최초로 미국의 링컨센터에서 공연을 가졌다. 그녀의 노래가사 대부분은 순수하면서도 유치하지 않다. 애절하지만 천박하지 않다. 속삭이는 듯하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봄같이 아늑한 소리를 내는가 하면 가을 같은 낭만적인 음색을 들려주기도 한다.
계절이 변하는 느낌까지 빠짐없이 전해 준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그녀는 항상 콘서트의 끝 곡으로 ‘짜이찌엔, 워더아이런(안녕, 내 사랑)’을 불렀다. 열창하면서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가 세상과 작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콘서트의 이 마지막 노래 가사는 그녀를 오랫동안 흠모했던 사람들의 가슴을 찔렀다.
'안녕, 내 사랑'
이 노래는 그녀가 그렇게 세상을 떠난 후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원히 빛나는 별을 남겼다. 수많은 팬들은 그녀가 없는 지금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중국영화 ‘티엔미미(첨밀밀)’
어느 젊은 남녀가 10여 년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사랑을 담은 애절한 사랑 얘기다. '덩리쥔'의 노래 '티엔미미'에서 영화제목을 따왔다. 달콤함이라는 뜻이고 인도네시아 민요에 중국어 가사를 붙인 것이다.
‘달콤해요, 당신의 미소는 달콤해요. 어디선가 꿈속에서 당신을 봤어요’ 마이크를 예쁘게 움켜쥐고 노래하는 모습은 애절한 사랑을 노래하는 주인공의 얼굴이다.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간절하고 달콤한 그 영화의 잔상이 나의 뇌리를 스쳐간다. 빠른 템포이긴 하지만 절제된 몸놀림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있다. ‘예라이시앙(야래향)’이 그것이다. 정확한 언어 전달, 당당하면서도 고음과 저음을 부드럽게 넘나드는 그녀의 창법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달 아래 꽃들은 모두 잠들었는데 오직 야래향만이 향기를 내 뿜습니다'
'야래향을 품에 안고 꽃잎에 입맞춤하는 꽃 같은 꿈을 더더욱 사랑합니다' 그녀는 언제나 사랑을 노래하는 가수였다. 그녀가 보내는 사랑의 메아리는 계속 울려 퍼진다. 그녀는 달빛을 사랑했는가 하면 그리움을 즐겼다. ‘당신은 내게 물었죠' '내가 그대를 얼마나 깊이,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얌전한 몸놀림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달빛에 어려 눈이 부신다.
‘내 마음도 사랑도 진실이에요.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고 있잖아요’ 듣는 나의 마음은 더욱 차분해진다. 밤하늘의 달빛을 쳐다보며 부르는 노래 ‘웨량다이비아오워더신’月亮代表我的心을 듣고 있노라면 말이다.
오늘 저녁은 유달리 '덩리쥔'의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그녀가 읊조리는 사랑의 속삭임을 귀에 담고 싶기 때문이다. 중국 근무 때 거실에서 조명을 낮추고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나의 손에는 어느새 한 잔의 와인이 쥐어져 있었다. 중국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동안 나도 어느새 ‘덩리쥔’의 팬이 되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