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득한 옛날 나의 고향은 티베트였음이 틀림없다. 황량하고 척박한 땅,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티베트 수도 라싸에 도착하니 가슴 저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백두산보다 높은 이국땅에서 고산병이 시작되었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풍경들이 나를 울컥하게 했다.
마니차를 돌리며 걸어가는 사람들, 염주를 들고 뒤뚱뒤뚱 힘든 걸음을 내딛는 늙은 아낙들, 이마에 못이 박히도록 삼보일배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들을 보면서 나는 왠지 눈물이 났다. 사람들이 볼까 봐 애써 감추긴 했지만, 솟구치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달라이라마의 여름철 별궁이었다는 노블링카를 둘러보았다.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 있긴 하지만 이 지역은 한족을 포함한 지역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도시락을 싸 들고 소풍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붉은 군대가 포탈라궁전을 공격해 올 때 달라이라마는 이곳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탈출을 하여 인도로 망명했다고 한다.
인구 80만 명의 티베트 자치구 수도 라싸는 별천지와 같았다. 어디서 온 순례자들인지 길바닥에 온몸을 던져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옴마니반메훔을 외며 염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성자와 같았다. 무엇이 이들의 삶을 이토록 절박하게 만들었을까.
점차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아픈 것을 보니 고산병 증세가 악화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라싸에서의 첫날밤은 고통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목구멍으로 신물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을 토했는지 모른다. 날이 새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튿날 포탈라궁전을 둘러보았다. 달라이라마가 여기서 살았다고 한다. 2,000개나 되는 벌통 같은 방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탱화와 불상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수도승들이 불경을 외면서 수행을 했을까. 버터램프의 희미한 불빛 아래 붉은 군대의 야만이 오버랩 되어 마음이 복잡해졌다.

오후에는 장엄한 바위 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세라사원으로 향했다. 쫑카파 대사가 세웠다고 하는데, 젊은 승려들을 양성하는 불교대학 역할을 하는 곳이다. 나무그늘 아래에서 스님들이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고 있었다. 다큐에서 자주 봤던 야단법석이 펼쳐졌다. 산을 옮기고 바닷물을 다 마셔버릴 것 같은 기개로 상대의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은 법거량의 현장을 보니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원 앞 마당 한 켠에는 신도들이 절을 하거나 독경을 하면서 앉아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 앉아서 쉬다가 오체투지를 21배 했다. 한국에서도 매일 아침 귀의대배 수행을 하고 있지만, 티베트 땅에서 하는 오체투지는 감회가 특별했다.
세라사원 한쪽 모퉁이에서 천진한 아이들을 만났다. 부모와 함께 온 어린아이가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마!" 내 귀에는 엄마로 들렸다. 아버지는 '아바'라고 한다고 가이드가 귀띔해 주었다. 몽고반점이 있는 사람들이 엄마 아빠까지 비슷한 소리로 발음하고 있는 티베트족은 범 몽골리안으로 우리 민족과 닮은 점이 너무 많았다.
티베트 최초의 불교사원인 조캉사원에 갔다. 당나라 문성공주가 티베트의 초대 왕 송첸 감포에게 볼모로 시집와서 큰 호수를 메워 건립했다는 고색창연한 절이다. 문성공주는 산 넘고 물 건너 양떼를 몰고 불교 경전과 누에씨를 갖고 라싸까지 왔다. 남자들의 전쟁과 권력 다툼 앞에 철저히 희생당한 공주는 "천하의 강물이 모두 동쪽으로 가는데 나만 홀로 서쪽으로 가는구나"라고 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의지할 부처님이라도 없었다면 낯선 토번 땅에서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불교신도라면 죽기 전에 꼭 한번은 가봐야 한다는 조캉사원은 순례자들의 종착지다. 사원 입구 바코르광장에는 관광객들과 성지순례자들로 붐볐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리고 조캉사원으로 신혼여행을 온 신혼부부들의 풋풋한 웃음소리가 광장을 더욱 빛나게 했다. 손자가 끄는 수레를 타고 조캉사원에 참배하러 온 어느 늙은 할아버지도 새파랗게 젊은 날이 있었을 것이다. 인생무상을 절감할 수 있는 곳이 바코르광장이다.
이제 시가체로 갈 시간이 되었다. 라싸에서 시가체로 가는 길은 고원의 연속이다. 우리는 에프킬라처럼 생긴 산소통을 하나씩 꿰찼다. 백팔 구비를 돌아 해발 4,990미터의 캄팔라고개에 올라섰다. 코발트색 암드락초 호수가 눈 아래 펼쳐졌다. 티베트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호수다. 하늘이 푸르고 호수도 푸른데, 타르초가 오방색으로 흩날리며 새파란 호수를 흔들고 있었다.
5,000미터를 넘어 올라서니 숨이 막히는데, 산소통을 코에 대고 심호흡을 해도 잠시뿐이었다. 순간 발아래 핀 야생화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놓아라. 내려놓아라. 바람이 거센 높은 산에서는 납작 엎드려야 산다." 야생화는 땅에 붙어 꽃잎만 내밀고 있었다. 잎이나 줄기가 바람 앞에 얼마나 거추장스러웠으면 맨살의 꽃잎만 내밀었을까.
성황당처럼 생긴 고갯마루에는 어김없이 타르초가 휘날리고 바람이 돌리는 풍력 마니차가 홀로 돌고 있었다. 누가 쌓았는지 모를 돌탑이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고갯마루를 지키고 있었다. 탑돌이를 하는데 마음 저 깊은 곳에 있는 그 무언가가 뭉클뭉클 쏟아져 나오려고 했지만 나는 꾹꾹 눌러대며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산소통을 코밑에 대고 있는 나는 질긴 야생화처럼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데 무엇을 바라고 또 빌겠는가. 암드락초 주변을 도는데 검은 야크떼가 순식간에 산등성이로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고산에서는 인간이 야크보다 못한 미물임을 절감했다.
암드락초 호반으로 내려와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타고 시가체로 향했다. 이 길은 네팔을 통해 인도로 갈 수 있는 길이며, 곧장 가면 수미산 카일라스로 갈 수도 있다. 해발 5,290미터의 카뤄라 빙하 앞에 서니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하잘나위 없는 존재임을 실감했다.

얼마쯤 가다가 작은 시골 마을 장체에 있는 백거사라는 절을 둘러보았다. 거대한 탑에는 108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의 문을 들어서니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불보살들이 모셔져 있었다. 마이트레야 미륵불, 만주시리 문수보살, 사만타바드라 보현보살, 아발로키테스바라 관세음보살은 물론이고 눈을 부릅뜬 빠드마삼바바의 분노존 바즈라킬라야와 관세음보살의 눈물에서 나왔다는 자비의 화신 따라보살도 있었다. 이 척박한 땅에서 이런 불보살들이 없었다면 인간은 생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종교가 자연이고 자연이 종교인 것 같았다.
오후에 시가체에 도착했다. 티베트 속의 작은 티베트인 시가체는 티베트의 문화와 풍속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장이다. 라싸는 자본을 앞세운 한족들이 밀고 들어와 중국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으나 시가체는 다르다. 변방에 있는 도시는 환경이 열악하여 한족들이 와서 정착할 엄두를 못 내기 때문일 것이다. 티베트에서도 굽은 소나무인 시가체가 선산을 지키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에베레스트는 티베트어로 초모랑마라고 한다. 대지의 여신이란 뜻이다. 초모랑마 국립공원 입구에 이르니 눈보라가 치고 싸락눈과 함께 우박이 내렸다. 준비해 간 티베트의 목도리 카닥을 타르초에 걸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가면서 네팔로 가는 갈림길인 뉴팅그리를 지났다. 지난 2월에 이 지역을 강타한 지진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입구에서 무공해 전기차를 타고 자우라산 꼭대기로 향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손이 시려웠다. 멀리 구름 속에서 로체, 마칼루, 초오유 등 영봉들과 에베레스트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고산병이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이날은 거의 뜬눈으로 지새며 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를 했다. 일행 중에 의사가 두 명이나 있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한의사는 내게 침을 놓아주고 생약 소화제를 주었다. 산소통에 코를 대고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날이 밝았다. 식사는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수박과 오렌지를 조금 먹고 견뎠다.
새벽부터 초모랑마의 일출을 보기 위해 서둘렀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초모랑마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돋는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초모랑마는 구름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가 금방 사라지곤 했다. 아, 이걸 보려고 이 고생을 했던가. 대지의 여신은 나를 보고 미소 지으며 반갑게 손짓했다.
베이스캠프 바로 옆에는 예사롭지 않은 절이 하나 있었다. 하늘과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롱푸사로 들어서니 여승이 버터램프에 불을 붙여 불단에 올리라고 나에게 주었다. 불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이 순간 다키니로 보였다. 티베트 불교의 다키니는 천사와 비슷한 존재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수행자를 돕는 존재다. 그녀의 낭랑한 독경 소리가 초모랑마 기슭에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티베트고원과 히말라야를 여행하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가볍게 걷는 트레킹이라 하지만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가 있는 해발 5,400미터까지 올라가야 한다. 산소 부족으로 극심한 고통이 따른다. 라싸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해발 300미터인 성도(청두)로 내려오니 고산병 증세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배려심 깊은 친구들 덕분에 낙오하지 않고 티베트 순례 여행을 마친 것은 내 인생의 기적이다.
오지 여행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야 한다. 한국에 오니 의사 친구가 "산소 부족으로 뇌세포가 조금 죽었을 거다"라고 했다. 그래도 좋다. 언제 또 이런 여행을 하겠는가. 지구촌에서 몇 안 되는 원형의 삶이 그대로 남아 있는 티베트 순례 여행은 내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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