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숙 칼럼] 목숨으로 지켜낸 문화유산

민은숙

강화도에서 조선 태종의 명으로 해인사로 옮겨진 이래 해인사는 ‘법보종찰’로서 교과서적인 사찰이 되었다. 부처님의 말씀인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이곳은 종교적 의미를 넘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 민족의 앞선 기술력과 지혜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역사적 현장이다.

 

팔만여 장의 경판, 그 목판 하나하나에는 전쟁과 불길 앞에서도 지켜내고자 했던 숭고한 정신이 스며 있다. 1817년의 대화재로 많은 목조 건물이 소실되었지만, 팔만대장경만은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이 기적은 경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스님들의 헌신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해방 이후의 격동기인 한국전쟁 당시에도 팔만대장경은 또 한 번 위기에 처했다. 전투기 폭격 명령이 떨어졌을 때이다. 김영환 장군은 해인사를 불태울 수 없다며 명령을 거부했다. 

 

그는 전시 상황 중 명령 불복종에 따른 즉결처분을 각오하면서 항명해 어머니가 다니던 사찰이자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끝내 지켜냈다. 이후 다시 전투에 나선 그는 안타깝게도 34세의 나이로 실종되었다. 그의 선택은 문화와 민족의 미래를 위한 숭고한 결단으로 많은 사람이 회자하고 있다.

 

비로자나불을 봉안한 대적광전은 지금까지도 웅장한 모습임에도 고요한 빛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그 아래 깃든 수많은 이야기는 우리 문화유산의 정체성과 무게를 말해준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목숨을 걸고 지킨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계가 인정한 정신적 가치로 더욱 빛난다.

 

‘보존’이란 외형을 관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 깃든 정신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까지 포함된다. 해인사를 통해 우리는 문화유산이 삶 깊숙이 어떻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또 이를 지켜낸 이들의 몫으로 오늘 우리가 문화적 자긍심을 누리고 있다는 것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문화재는 눈에 보이는 형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뜻’도 간직한 존재이다. 해인사의 대장경 앞에 서면, 나뭇결 사이사이에 살아 숨 쉬는 생명과 정신 앞에서 우리도 그 가치를 지켜야 함과 그 뜻을 이어줄 다리임을 조용히 되새기게 된다.

 

 

[민은숙]

시인, 칼럼니스트

제4회 코스미안상

제3회 문학뉴스 &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2024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 강사

꿈다락학교 시 창작 강사

문화재단 & 예술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이메일 : sylvie70@naver.com

 

작성 2025.08.27 09:15 수정 2025.08.2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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