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 9월 중국 충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대로 창설된 <한국광복군 창설>을 ‘2025년 9월의 독립운동’으로 선정했다고 국가보훈부가 밝혔다. 한국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충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창설되었다. 한국광복군은 정신적으로 대한제국의 국군을, 인적으로는 독립군을 계승하였음을 대내·외에 천명하였다.
광복군은 총사령부와 지대로 구성되었으며, 초기에는 4개 지대 체제로 출발하였다. 1942년 조선의용대가 합류하면서 편제가 재편되었고, 이후 제1·2·3지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병력은 창설 초기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국내·외 동포들의 지원과 광복군의 적극적인 병력 모집·선전 활동을 통해 1945년 광복 직전에는 1,000여 명 규모의 정규군으로 성장하였다.
광복군은 일본군에 소속된 한인 병사와 적 후방의 한인 청년을 포섭하는 초모공작과 이들에 대한 교육과 훈련, 적군에 대한 정보 수집과 교란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광복군은 선전 활동을 중시하였는데, 충칭방송국과 기관지 ‘광복’을 통해 국내외 동포에게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알리고,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1943년 한국광복군은 인도-버마 전선에 ‘인면전구공작대’를 파견하여 영국군과 함께 일본군을 상대로 작전에 참가하여 선무공작, 후방지역 교란, 문서 번역 등을 수행하였다. 공작대는 1944년 초 임팔 전투에서 큰 활약을 하여 영국언론의 극찬을 받았으며, 1945년에는 버마 총반격전에도 참여하는 등 2년간에 걸쳐 대일작전에 참여하였다.
1945년에는 미국 전략첩보국(OSS)와 합작하여 한반도 침투를 위한 국내진입작전을 준비하였다. 선발된 광복군 대원 50명은 시안에서 첩보·통신·심리전 등의 훈련을 받았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실전에 투입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국내진입작전은 인면전구공작대의 영국군 합작과 더불어 광복 직전에 추진된 연합군과의 협동 작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광복군은 일제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전개했던 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 연합군과의 연대를 통해 국제적 지위를 확보하고자 했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한 자주적 독립의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한편, 국가보훈부는 2025년 이달의 독립운동을 선정하기 위해 지난해 4월 23일부터 5월 22일까지 1개월간 국가보훈부, 광복회, 독립기념관 등의 누리집을 통해 국민의 추천을 받았다. 국민이 추천한 9월의 독립운동은 한인합성협회 설립(1907), 대한독립의군부 조직(191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