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선 소감]
가을의 문턱에서 싱그러운 바람에 실려 온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7회 코스미안상’ 당선이라는 가슴 벅찬 소식입니다. 부족한 저의 글에 귀한 상을 안겨주신 코스미안뉴스와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 인생에 있어 참 뜻밖의 큰 영광입니다.
글쓰기는 잡초를 뽑고 씨앗을 심는 일이었습니다. 가뭄에 글이 메마르고 비바람에 문장마저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 글자 한 문장을 쌓아가며 저만의 목소리를 만들어왔습니다. 이제 마음 밭에 심어온 언어의 씨앗들이 소중한 새싹을 틔웠습니다.
감성이 메말라가는 시대에 문학은 지친 영혼을 어루만지고 메마른 마음에 희망을 심는 일입니다. 제게 글쓰기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세상과 나누는 숨결입니다. 꽁꽁 얼어버린 마음을 깨뜨리는 도끼처럼, 글쓰기의 날을 갈고 닦아 진정성을 담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광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묵묵히 삶의 무게를 견디는 분들, 글 속에서 빛과 아름다움을 찾는 분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길 바라는 모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지구촌공동체를 꿈꾸는 인문 중심 칼럼에 보탬이 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독자의 마음에 오래 머물며, 더 멀리 더 깊은 향기를 내는 글을 쓰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칼럼] 씨앗 하나
삶은 씨앗을 뿌리는 여정이다. 흙을 고르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그렇게 한 발짝씩 나아가는 여정이다. 돌이켜보면 참 더딘 걸음이었다. 세사(世事)에 얽매여 허송세월하다 뒤늦게 대학을 졸업했고,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56세에 다시 도전해 60세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거북이보다도 느렸지만 그나마 멈추지는 않았던 것 같다.
11년 전 창문을 두드리는 봄비에 일본에서 만난 한 상사맨이 떠올랐다. 가방 하나 들고 제2의 인생을 사는 그가 내 안에 경영지도사라는 씨앗을 심어주었다. 새로운 꿈을 품고 도전했지만, 첫 시험에서는 싹을 틔우지 못했다. 순간 좌절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잠을 쫓으며 시간을 쪼개 노력한 끝에 이듬해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 배움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빛을 발했다. 직장 퇴직 후 대학에서 기술 경영과 회계 원리, 유통 과목을 가르쳤다. 박사 학위와 경영지도사 자격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배움은 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나누는 것으로 완성되는 듯했다.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 정보통신학과의 한 학생이 호기심으로 경영 과목을 들었다. 전공과 상관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점차 눈빛이 달라졌다. 몇 달 후 그가 찾아와 말했다. 채용 면접에서 회계와 사업성 분석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으로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다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작은 씨앗 하나가 생각지 못한 곳에서 꽃을 피운 것 같았다.
작년 폭설이 내리던 날, 한 대학교 캠퍼스에 조각상이 하나 나타났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닮은 작품이었는데, 이공계 학생이 눈으로 빚은 예술이었다. 폭설을 보는 순간 무언가 번뜩였을 것이다. 관심이라는 작은 씨앗 하나가 예술을 피워낸 것이다. 씨앗은 경계를 모른다.
80세 지인이 그런 분이다. 대학교 명예교수인 그는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학부 시절부터 호기심이 많아 정치사상사, 동서양사, 동양철학은 물론 중소기업론, 물리학까지 닥치는 대로 들었다. 지금도 시 창작 교실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작년 한 해에만 80여 편의 시를 발표했다. 가르치면서 오히려 배운다고 했다. 인간이 품은 씨앗은 나이를 모른다.
“젊은 시절에는 한 우물만 파라는 것이 세상의 상식이었죠. 하지만 여러 우물을 파야 맛있는 물을 마실 수 있어요.”
그의 말은 처음엔 단순한 비유로 들렸지만, 곱씹을수록 그 깊이가 느껴졌다. 80년 세월 동안 쌓인 다양한 지식이 그의 시 속에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는 말이 떠오른다.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혁신적 시각을 가지라는 메시지다. “애플은 인문과 기술의 교점에 있다”는 그의 철학은 스마트폰 시대를 연 힘이 바로 융합이었음을 보여준다. 기술과 인문, 그리고 디자인이 만나 전에 없던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다. 한 가지 색깔로만 살지 말고 여러 색깔을 섞어 나만의 빛깔을 만들라고, 잡스가 내게 속삭이는 것 같다.
문득 어릴 적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한 우물을 파라.” 그 말을 듣고 자란 나는 한 직장에서 37년을 근무했다. 한곳에 오래 머무는 것이 독이 되기도 했다. 변화에 둔감해지고 시각이 좁아졌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재무, 인사, 영업과 해외 업무를 두루 경험했다. 한 우물 속에서도 여러 갈래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 돌이켜보니 그것이 나를 키운 자양분이었다. 한 우물도, 여러 우물도 결국은 깊이의 문제였다.
인생의 계절이 바뀌고 있다. 30세까지는 호기심으로 경험과 지식을 탐구하는 자기 발견의 시기, 60세까지는 전문성을 쌓으며 사회에 이바지하는 직업적 발전의 시기, 90세까지는 삶의 지혜를 나누며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성찰의 시기. 생각해 보니 이 또한 씨앗의 여정과 닮았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다시 씨앗을 맺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순환처럼 말이다.
우리는 초융합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인공지능이 사회를 빠르게 바꾸고, 다양성과 불확실성이 일상이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융합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기술만으로도, 인문학만으로도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생겨난다. 서로 다른 씨앗들이 한데 모여 꽃동산을 이루듯, 이질적인 것들이 만날 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처음엔 어색하고 부딪히지만, 서로 어우러지면 예상치 못한 혁신이 꽃핀다.
굽이진 삶을 돌아보니, 많은 날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시야에 갇혀 살았다. 조약돌 만한 지식과 경험으로 아는 척하고, 명함에만 기대어 우쭐대며 살았다. 씨앗도 익숙한 땅을 떠나야 새로운 꽃을 피운다. 이제야 깨달았다. 초융합의 시대에 풍성한 생명의 숲을 이루려면 이종의 씨앗들을 심어야 한다는 것을. 씨앗은 껍질을 깨고 나와 꽃을 피우고, 그 꽃이 다시 누군가의 씨앗이 될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지난 3년간 메마른 글쓰기를 반성한다. 이제는 조금씩 달라져 보려 한다. 논리만 추구하던 글에 감성을 담아보려 한다. 익숙한 영역을 벗어나 낯선 분야의 문도 두드려보려 한다. 서로 다른 것들이 내 안에서 만날 때, 비로소 살아있는 글이 되지 않을까. 배움의 끝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보는 것이리라.
어느덧 서산에 노을빛이 내 마음을 비춘다. 햇볕이 들 때도, 비나 눈이 올 때도 씨앗은 여전히 움튼다.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 하나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