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우 칼럼] 도파민 중독 사회, 인간은 어떻게 존엄을 회복할 것인가

제7회 코스미안상 은상

[수상소감]

 

귀중한 코스미안상의 영예를 안겨주신 심사위원님들과 코스미안뉴스 관계자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칼럼을 집필하는 동안, 인문학의 역할과 그 본연의 가치에 대해 거듭 사유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참으로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수많은 응모작 가운데 제 글을 선택해 주신 것은, 앞으로 더욱 진실한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며 인문학적 성찰을 이어가라는 격려로 받들겠습니다. 이번 수상을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 인간과 세계를 잇는 감수성을 글 속에 담기 위해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칼럼] 도파민 중독 사회, 인간은 어떻게 존엄을 회복할 것인가

 

오늘날 인간은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포로다. 스마트폰의 알림, 쇼핑몰의 할인, SNS의 숏폼은 모두 도파민을 미끼로 던져 우리를 사로잡는다. 알고리즘은 더 많은 클릭, 더 긴 접속을 유도한다. 이용자의 눈과 손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것이 그들의 설계 목적이다. 현대인에게 쾌락은 더 이상 금기가 아니라 일상이 되었다. 절제는 구시대의 덕목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욕망을 조절하는 주체에서 이탈했다. 시장이 주는 자극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소비자로 전락한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IT 기업 임원들이 정작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스마트폰과 태블릿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다는 사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는 자녀들에게 아이패드를 주지 않았고, 빌 게이츠는 14세 이전 스마트폰을 금지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디지털 세계의 중독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도파민 중독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진화적 기원을 살펴봐야 한다. 도파민은 본래 생존을 위해 진화한 보상 시스템이다. 먹이를 발견하거나 위험을 피했을 때 분비되어 그 행동을 반복하도록 만드는 뇌 속 장치였다. 이 원시적 메커니즘을 자본주의가 교묘히 해킹했다. 인간의 주의를 포획하고 그것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를 탄생시킨 것이다.

 

오늘날의 인간은 더 이상 사냥과 채집을 위해 숲을 헤매지 않는다. 대신 플랫폼이 인위적으로 설계한 온라인 속 숲을 헤맨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우리가 언제 접속하고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추적한다. 그리고 언제나 이전보다 더 강한 자극을 제공한다. 원초적 보상 회로가 무한 자극의 공급망과 맞닿는 순간, 개인은 자신의 뇌에 내장된 프로그램을 거슬러 올라갈 힘을 잃는다. 끝없는 욕망 추구는 개인의 의지가 아니다. 진화와 산업이 교차하며 빚어진 구조적 필연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도파민의 독특한 특성이다. 신경과학자들은 도파민이 ‘want(원하다)’를 담당하지만, ‘like(좋아하다)’와는 별개라고 설명한다. 도파민은 우리가 무언가를 갈망하도록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이다. 반면 실제 만족감은 세로토닌이나 옥시토신 같은 다른 물질이 선사한다. 다시 말해 도파민은 욕망의 추진력이지 행복의 원천이 아니다. 바이럴 영상이 준 재미는 단 몇 초 만에 증발한다. 새 스마트폰을 손에 넣은 기쁨은 며칠 못 간다. SNS의 팔로워는 늘어나도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는다. 반복된 자극은 뇌의 수용체를 둔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자가 점점 더 많은 양을 필요로 하듯, 우리도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아 헤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 도파민 중독의 가장 심각한 측면은 철저히 개인화된 쾌락 추구라는 점이다. 혼자 화면을 보며 느끼는 순간적 자극은 타인과의 깊은 연결을 밀어낸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나타나는 ‘젠지 스테어(Gen Z stare)’ 현상은 이러한 고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Z세대가 낯선 사람과 마주쳤을 때 보이는 특유의 행동 패턴이다. 말을 섞는 대신 무표정하게 응시만 한다. 상대방이 불편해하든 말든 개의치 않는다. 마치 현실의 타인을 게임 속 NPC(Non-Player Character)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자극과 재미를 제공하지 못하는 존재는 단순한 배경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인간을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를 지닌 주체가 아니라, 나의 욕망을 충족시킬 때만 의미 있는 도구로 전환하는 폭력이다.

 

여러 담론에서 ‘디지털 디톡스’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일정 시간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SNS를 차단하는 시도다. 물론 이런 실천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가 전면적으로 디지털에 의존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강제된 단절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에 이르기 어렵다. 인터넷을 끊는다고 공허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서적 불안과 생활의 불편만 남는다.

 

도파민 중독 사회의 핵심은 사용량의 과다가 아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 왜곡된 데 있다. 따라서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은 ‘절제’가 아니라 ‘회복’이다. 훼손된 인간 존엄을 다시 세우는 일, 그것이 진정한 해답일 것이다. 그리고 이 회복을 일으킬 치유제는 다름 아닌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삶의 가치를 성찰하는 힘을 길러준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살펴보자. 개인 차원에서는 깊이 있는 독서와 글쓰기가 출발점이다. 전국적으로 ‘트레바리’, ‘식글북적’ 같은 독서 모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부산의 ‘진지한 책방’, ‘베이트리 북클럽’ 등 지역 서점을 중심으로 한 독서 커뮤니티도 활발하다. 이들은 단순히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함께 토론하고 삶에 적용하며 공동체적 지혜를 쌓는다. 교육 차원에서는 북유럽의 ‘숲 유치원’이나 독일의 ‘발도르프 교육’이 좋은 모델이 된다. 디지털 기기 대신 자연과 예술, 수공예를 통해 아이들의 감성과 창의성을 기른다. 성적과 경쟁보다 협력과 공감을 중시한다. 한국에서도 혁신학교나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이러한 시도가 퍼지고 있다.

 

기업 차원으로는 EU의 디지털 서비스법(DSA) 같은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용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통제할 권한을 보장해야 한다. 중독을 유발하는 다크 패턴(Dark Pattern) 디자인을 규제하고, 디지털 웰빙을 위한 기능을 의무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동체 차원에서도 주목할 움직임이 있다. ‘느린 기술(Slow Tech)’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효율과 속도가 아닌 인간의 리듬에 맞춘 기술 사용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페어폰(Fairphone)’은 5년 보증과 8년 소프트웨어 지원을 제공하는 모듈형 스마트폰을 만든다. 사용자가 직접 부품을 교체할 수 있어 전자 폐기물을 줄여준다. 또한 여러 나라에서 주 1회 디지털 기기 없는 날을 실천하는 개인과 커뮤니티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술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 설정 가능성을 보여준다.

 

존엄은 자극을 넘어 의미를 선택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즉각적 보상을 거부하고 장기적 가치를 추구할 때 인간다워진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성찰하는 삶’을 떠올려보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추구한 ‘좋은 삶’을 생각해보자. 공자가 강조한 ‘인(仁)’의 가치를 되새겨보자. 퇴계 이황은 ‘경(敬)’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라 했다. 욕망을 절제함으로써 삶의 중심을 세우라 했다. 이 지혜들은 모두 한 가지를 가리킨다. 인간을 도파민의 노예가 아닌, 자기 삶의 의미를 선택하는 주체로 세우는 길이다.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인간 중심 디자인(Human-Centered Design)’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기술이 인간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돕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명상 앱은 도파민 대신 세로토닌 분비를 돕는다. AI는 중독 패턴을 분석해 사용자에게 경고한다. 디지털 기기는 ‘집중 모드’와 ‘수면 모드’로 건강한 사용을 유도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디지털 안녕(Digital Flourishing)’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 기술이 인간의 번영을 위해 봉사하는 사회. 연결되되 중독되지 않고, 효율적이되 인간적인 사회. 도파민의 즉각적 자극보다 옥시토신의 다정한 교감이, 개인의 성취보다 공동체의 행복이 중시되는 사회. 이것은 도달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현실이다.

 

결국 우리가 마주한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알고리즘이 정교해질수록, 자극이 강렬해질수록, 우리는 더 깊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도파민이 선사하는 찰나의 쾌락과 인간 존엄이 요구하는 지속적 성찰 사이에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그 선택은 쉽지 않다. 뇌 속 원시적 회로는 즉각적 보상을 갈구하고 자본의 논리는 그 갈구를 부추긴다. 하지만 인간의 위대함은 바로 이 어려운 선택을 감행하는 데 있다. 좋아요 숫자 대신 진정한 관계의 깊이를 추구하는 지혜, 무한 스크롤을 멈추고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인내. 이러한 작은 저항들이 모여 거대한 전환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도파민의 노예에서 의미의 주체로, 알고리즘의 포로에서 선택의 주인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술 문명의 파도는 계속해서 밀려올 것이다. 그러나 그 파도에 휩쓸릴지, 파도를 타고 나아갈지는 우리의 실천에 달렸다. 도파민을 넘어 존엄으로 가는 길, 그것은 먼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작성 2025.10.24 10:08 수정 2025.10.24 10:30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최우주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