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무법인 휘명은 오산 세마역 현대프리미어캠퍼스 지식산업센터 수분양자들을 대리하여 시행사, 신탁사, 그리고 중도금대출 은행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시행사 및 신탁사를 상대로는 분양계약의 해제, 취소, 철회, 무효를 주장하며 분양대금 반환을 구하고, 중도금대출 은행을 상대로는 중도금대출 채무의 부존재 확인을 구하는 것이 소송의 골자입니다.
이 중 오늘 칼럼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분양대금 대출, 특히 잔금대출에 얽힌 약속과 현실의 괴리입니다.

90% 약속, 50% 미만 현실: 무너진 금융 계획
분양 당시 시행사와 신탁사는 분양대행사를 통해 수분양자들에게 “계약금 10%만 있으면 된다”, “중도금은 이자를 대신 납부하는 조건으로 대출이 가능하고”, “입주 시점에는 분양대금의 80~90%까지 잔금대출을 받아 기존 중도금 대출을 상환하고 잔금을 납부할 수 있다”고 홍보했습니다. 자금에 대한 걱정 없이 계약을 체결하라는 달콤한 약속이었습니다.
수분양자들은 이 말을 믿고 계약을 체결하고, 중도금 대출까지 실행하여 시행사의 사업에 자금을 투입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선분양 시스템 하에서 수분양자의 계약금과 중도금 대출은 시행사/신탁사가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핵심 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시행사는 중도금대출 협약을 맺고 지급보증 등 신용보강까지 제공하며 대출 실행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잔금을 치르고 입주할 시점이 되자,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분양대금의 80~90%'까지 가능하다던 잔금대출은 '분양대금 또는 현재 감정가의 50% 미만' 대출로 축소되었습니다. 대다수의 수분양자는 축소된 잔금대출만으로는 분양대금 납부는커녕, 기존 중도금 대출 원금조차 변제할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깨알 같은 글씨' 뒤에 숨은 책임 회피
이러한 상황에서 시행사, 신탁사, 중도금대출 은행은 수분양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분양계약서나 확인서, 심지어 분양광고의 아주 작은 글씨로 '추후 사정에 따라 대출 가부 및 대출금이 달라질 수 있음'이라고 고지하지 않았느냐는 논리입니다. 즉, 우리는 고지 의무를 다했으니, 이를 알고 계약서에 서명한 수분양자가 모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수분양자는 '대출이 최대 90%까지 된다'는 약속과 홍보를 계약 체결의 핵심 전제사실로 삼았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대출이 50% 미만일 것을 알았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신중했을 것입니다.
분양계약 및 대출계약은 분명 약속이고 합의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약속은 '분양대금을 내고 대출금을 갚겠다'이지만, 그 약속의 전제되는 사실은 '나중에 잔금은 분양대금의 90%까지 대출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행사, 신탁사, 중도금대출 은행은 이러한 전제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수분양자들의 돈을 통해 사업의 1차적인 이익(사업이익, 대출이자 이익)을 모두 취했습니다. 정부 정책 변화나 경제 사정 악화라는 외부 요인을 이유로, 그 모든 책임을 오직 최종 소비자인 수분양자에게만 떠넘기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타당한 일일까요?
진정한 합의와 새로운 시스템의 모색
현재 제기된 소송을 통해 분양계약과 중도금대출 계약의 무효, 취소, 해제, 철회 여부가 법적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나 법적 결론을 떠나, 계약 당사자 간에는 당초 약속했던 합의의 전제 사실을 확인하고 이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시행사, 신탁사, 중도금대출 은행은 다음과 같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1. 잔금대출을 당초 약속했던 수준으로 적극적으로 실행해주거나,
2. 수분양자들이 현재 가능한 대출금까지만 잔금을 받고, 나머지 미납금에 대해서는 신용을 제공하여 변제 기한을 연기하며, 신용불량 등 채권 회수 조치를 보류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약속의 이행이자 합의의 정신이라고 믿습니다.
나아가, 중도금대출이 중도금대출 은행 입장에서 일종의 부동산PF(Project Financing) 대출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선분양 시스템 하에서의 대출 위험은 수분양자만이 아니라 시행사, 신탁사, 중도금대출 은행이 함께 부담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추진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래야만 약자를 기망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불공정한 구조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