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기, 통계, 그리고 인간의 이성 - 수학으로 본 경쟁의 철학
“인간은 계산하는 존재이자, 동시에 계산을 배반하는 존재다.”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은 『팡세』에서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면서도,
감정과 신념이 그 이성을 끊임없이 흔든다고 말했다. 내기는 바로 그 모순의 결정체다.
내기에서 사람들은 ‘이길 확률’을 따지지만, 실제 행동은 확률이 아니라 희망의 무게에 따라 움직인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기를 거는 이유는 단순히 ‘돈’이 아니라,
“이길지도 모른다”는 확률이 주는 쾌감 때문이다.
수학은 내기의 언어를 만들었지만, 철학은 그 언어의 의미를 묻는다.
수학적 사고와 통계적 사고는 인간의 경쟁 본능을 ‘이성의 틀’ 안으로 데려오지만,
그 안에서도 인간의 본성은 여전히 비이성적이다.
이 글은 ‘내기’라는 작은 세계 속에서 인간의 이성, 통계, 철학이 어떻게 얽혀 있는가를 탐구한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 은 “이성은 감정의 노예다”라고 했다.
이 문장은 내기와 통계의 세계에서 가장 자주 증명된다.
사람들은 수학적으로 불리한 내기임을 알고도, 감정의 불균형 때문에 손을 뗄 수 없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은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에서
“손실 회피(Loss Aversion)”가 인간 판단을 왜곡한다고 분석했다.
간단히 말해, 사람은 이익보다 손실을 두 배 이상 크게 느낀다.
이 때문에 패배를 인정하는 대신, ‘다음에는 이길 수 있다’는 착각을 계속해서 강화한다.
통계학적으로 내기의 승률은 대부분 50% 미만이다.
그럼에도 내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수학이 아닌 심리학의 영역이다.
인간은 확률적 계산기보다는 희망의 해석자이기 때문이다.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이 말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이 양자역학을 비판하며 한 말이지만,
내기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내기는 불확실성 위에서 이루어지지만, 인간은 그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 한다.
통계학자들은 이를 ‘기대값(Expected Value)’ 으로 표현한다.
예컨대 동전 던지기 내기에서 1,000원을 걸고, 맞히면 2,000원을 얻는다면
기대값은 1,000원으로, 이론적으로 공정하다. 그러나 인간은 ‘두 번 연속 맞힐 수 있다’는
감정적 확신을 근거 없는 논리로 포장한다.
수학자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과 오스카 모르겐슈테른(Oskar Morgenstern) 은
『게임이론(The Theory of Games and Economic Behavior)』에서
모든 경쟁은 합리적 전략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실의 내기는 비합리성의 게임이다.
통계적 균형이 존재하더라도, 인간의 심리는 항상 불균형으로 기운다.
‘공정한 게임(fair game)’이라는 개념은 통계학에서 오래된 논쟁거리다.
공정하다는 것은 “기대값이 0”인 게임을 의미하지만, 인간은 이를 “승산이 있다”로 착각한다.
이 착각은 철학적으로 ‘운(Luck)’과 ‘책임(Responsibility)’ 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 는 『정의론』에서 “운은 사회적 구조가 보정해야 할 불평등”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기의 세계에서 운은 경험되지 않는 정의다.
내기판 위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유롭지만, 결과는 언제나 불평등하다.
통계학은 “운의 분포”를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 분포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철학의 몫이다.
우리는 패배를 ‘운이 나빴다’고 해석하지만,
철학자 칸트(Immanuel Kant) 의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단순한 확률이 아니라
“자유의지의 한계”에 대한 성찰이다.
“수학은 세계의 언어이며, 철학은 그 언어의 의미를 묻는 학문이다.”
이 말은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의 사상을 변주한 표현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경쟁과 내기의 세계에서 인간은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그들은 계산을 하고, 전략을 세우고, 패배를 정의한다.
수리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경쟁은 단순한 승부가 아니라 인간 이성의 실험장이다.
내기의 과정에서 우리는 수학을 배우고,
통계 속에서 윤리를 배우며,
결국 확률의 뒤에 숨어 있는 인간성을 마주하게 된다.
니체(Friedrich Nietzsche) 는 “경쟁은 인간을 강하게 하지만, 동시에 가장 약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 말처럼, 내기에서의 승리는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진정한 수리철학의 교훈은 ‘이기는 법’이 아니라 ‘이길 필요를 넘어서기’ 다.
내기는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게임이자, 가장 철학적인 실험이다.
통계는 내기의 결과를 예측하지만, 철학은 그 이유를 설명한다.
수학은 우리에게 “얼마나 이길 수 있는가”를 말해주지만,
철학은 “왜 이기려 하는가”를 묻는다.
이 글의 결론은 단순하다.
경쟁은 이성의 문제이지만, 승리는 철학의 문제다.
이길 확률을 높이는 것보다,
‘이성적으로 패배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야말로
수리철학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짜 내기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