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시인 한정찬의 "11월에 쓰는 시"
토란(土卵)
지난달에
토란대 손질한
내 손이 참 고맙다.
이번 달에
토란 뿌리 캐
내 가슴이 벅차다.
눈 들면
봄 여름 가을 머문
토란의 흔적에서
지난 계절이 그립다.
이미 나물거리 되었다는
뿌듯한 토란대다.
이제 국거리 되겠다는
기대 찬 토란 뿌리다.
희생의 뿌듯함이
11월 햇살처럼 빛난다.
짧게 기운 햇살 아래
다정한 토란 이야기가
농장 가장자리까지
들려오고 있다.
그리움의 온기로
두 귀 쫑긋 세워
토란 이야기를
경청하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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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엔
좋은 것 보고
단풍 들었다고
크게 환호할 일 아니다.
보고 싶은 것
잘 봤다고
마냥 웃을 일 아니다.
수많은 단풍 아래
무수한 파란 잎들이
단풍에 물들지 못하고
추적추적 말라가고 있다.
좋은 일 맞이하면
그늘진 곳 가까이 다가
친구로 이웃으로
말보다 따뜻함을 나눌
다정함을 가져야 한다.
11월엔
떠나가는 낙엽을 보며
남은 초목처럼
고독을 준비해야 한다.
11월엔
희나리 파란 이파리에
한 모금 시 쓰고
가슴 아파해야 한다.
11월엔
불어오는 바람결에
영혼의 먼지 털고
그저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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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바닷바람 올라온 바닷가에
살갗에 부대끼는 오방기
펄럭이고 있는데
갈대는 고개 흔들며
온몸으로 부정하고 있다.
산바람 내려온 바닷가에
나뭇잎은 아래로 떨어져
흩날리고 있는데
억새는 고개 흔들며
온몸으로 부정하고 있다.
더 올라갈 수도 없고
더 내려갈 수도 없는
평행선의 기 싸움에
부정에 부정을 더한
긍정의 그 자리에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겨울의 문턱에서
호들갑 싸움질하는
산바람 바닷바람에
맑은 술 한잔하자는
회오리바람 앞에
이마가 차갑다.
아, 11월이다.
섬마을
담장 아래 다알리아꽃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11월의 노래
해지니 차갑습니다.
온몸이 춥습니다.
아궁이에 땐 군불에
저녁연기가 피어날 때
시냇물 소리를 더 가까이
끌어왔다 끌어가는
11월입니다.
깡말라 가는 들풀은
이미 풀이 아닙니다.
내 옷가지에 달라붙은
풀씨에서
11월의 집착을 봅니다.
한때 당신을 그리워한
그 생각에 젖어봅니다.
온 세상의 그리움이
마른 풀잎에 붙은
서리처럼 시려옵니다.
빈 산에 핀 억새꽃처럼
빈 강가에 핀 갈대꽃처럼
외롭고 시린 내 마음이
저문 날 영혼의 심지를 돋워
겸허한 종교로 돌아갑니다.
11월에는
기도가 약입니다.
기도하는 삶이 시간을 가꾸고
산하는 하얀 입김에
한껏 따뜻해집니다.
11월
11월,
그저 빈 지게를 지고 싶다.
그대 아침노을에 불타오른 가슴
열정의 향으로 남고 싶다.
한때는 사랑에 죽도록 빠져
넋 나간 내 영혼이
그대 화려한 단풍처럼
곱게 곱게 물들이고 싶다.
11월,
창가에 스치는 시린 바람결이고 싶다.
그대 말씀의 향기가 퍼지고 스민
황국화로 피어 있고 싶다.
별 총총 돋은 어느 날 초저녁에
그대 모습의 또렷한 흔적이 서린
땡감 하나로 남고 싶다.
11월,
지내 온 세월 결에 묻히고 싶다.
그대 모습이 더 빛나고 화려하게
온화한 한 결로 가고 싶다.
날마다 갈아입는 행복처럼 오늘도
그대 삶 앞에 좋은 일만 있기를
고맙게 축복하고 응원하고 싶다.
한정찬
□ (사)한국문인협회원, (사)국제펜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외
□ 시집 ‘한 줄기 바람(1988)외 29권, 시전집 2권, 시선집 1권, 소방안전칼럼집 1권’ 외
□ 농촌문학상, 옥로문학상, 충남펜문학상, 충남문학대상, 충청남도문화상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