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정보화 시대는 누구나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라 불린다. 그러나 정작 ‘잘 모르면서도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현상을 설명하는 대표적 개념이 바로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다. 1999년, 미국 코넬대학교의 사회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과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는 실험을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실력이 낮은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반대로 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한다는 역설적인 결과였다. 그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문법, 논리, 유머 감각 등의 문제를 풀게 한 뒤 자신이 얼마나 잘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하위 25%에 속한 참가자들이 실제 점수보다 평균적으로 40% 이상 높게 자신을 평가했다. 반면 상위권 참가자들은 자신을 실제보다 낮게 평가했다.
더닝 교수는 이 결과를 이렇게 요약했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능력이 필요하다.”
이 한 문장은 이후 심리학, 조직 연구, 교육, 정치,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확신에 찬 무지’의 상징처럼 인용되고 있다.
자신감은 높은데 실력은 부족하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단순히 개인의 착각을 넘어 사회적 현상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인터넷 시대 이후, ‘아는 만큼 보인다’보다 ‘모르는 만큼 말한다’는 풍조가 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SNS에서는 백신 효과, 바이러스 전파 원리, 치료법 등에 대한 비전문가의 자신감 넘치는 주장이 폭증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2021)에 따르면, “과학적 지식이 낮은 집단일수록 음모론적 신념과 허위정보 확산률이 높았다.” 이는 더닝-크루거 효과의 전형적 패턴이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인식의 결함이 ‘잘못된 확신’을 낳고, 사회적으로는 정보 혼란과 갈등을 부추긴다.
확신에 찬 무지의 사회, SNS가 키운 착각의 생태계
SNS는 더닝-크루거 효과의 ‘증폭기’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2020)는 “SNS 이용자 중 58%가 자신의 견해를 과학적 근거보다 개인 경험에 더 의존한다”고 밝혔다. 트위터(X),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은 ‘확신에 찬 발언’이 더 많은 반응을 얻는 구조다. 즉, 자신감 있는 목소리가 사실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갖는 시스템이다.
특히 ‘댓글 전문가’나 ‘유튜브 의사’ 같은 현상은 더닝-크루거 효과의 디지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정보가 넘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쉽게 단정하는 말’을 더 신뢰하게 된다. 확신이 설득력을 갖는 사회에서, 겸손한 지식인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미국 심리학협회(APA)는 2023년 보고서에서 “SNS는 개인의 인지 편향을 강화하며, 잘못된 정보에 대한 자신감을 높인다”고 분석했다.
리더십과 조직의 붕괴: ‘나는 옳다’의 함정
더닝-크루거 효과는 개인의 인식 문제를 넘어 리더십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표적 사례가 2008년 금융위기다. 월가의 금융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위험 관리 능력을 과신했고, 파생상품의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다. 결국 글로벌 금융 시스템은 붕괴 직전까지 갔다.
정치 영역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있다. 브렉시트 당시, 영국의 일부 정치인들은 전문가 경고를 ‘지나친 비관론’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이후 파운드화 급락, 무역 차질, 투자 감소 등 심각한 부작용이 현실화됐다. 한국에서도 “내가 제일 잘 안다”는 확신형 리더들이 불필요한 갈등과 정책 실패를 초래한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2023년 한국행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조직 리더의 자기 확신이 높을수록 내부 의사소통과 피드백 효율성이 낮았다.” 즉, 확신은 때로 리더십의 독(毒)이 된다.
겸손한 지성의 회복,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
더닝-크루거 효과는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겸손한 지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경고다.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은 ‘성장형 마인드셋(Growth Mindset)’ 개념에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배우려는 태도는 지적 성장의 출발점”이라 말했다.
하버드대 교육대학 연구(2022)는 “비판적 사고 훈련을 받은 학생들은 잘못된 확신을 가질 확률이 43% 낮았다”고 밝혔다. 즉, 무지를 인정할 용기는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사회적 지능의 표현이다. 사회 전반에 ‘나는 잘 모르니 더 배우겠다’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더닝-크루거의 함정을 벗어날 수 있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인간의 본성적 오류이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문제는 ‘모르는 것 자체’가 아니라 ‘모르면서도 확신하는 태도’다. 지식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깊이다. 스티븐 호킹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지식의 가장 큰 적은 무지가 아니라, 지식이라는 착각이다.”
이제 우리는 확신보다 겸손을, 주장보다 경청을 배워야 한다. 더닝-크루거의 시대를 넘어, 무지를 인정하는 용기가야말로 진정한 지성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