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3년 사이 국내 청년층 일자리 21만 개가 사라졌다.
그 가운데 99% 이상이 인공지능(AI) 기술에 가장 많이 노출된 산업군에서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BOK 이슈노트: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11월 이후 청년층(15~29세)의 고용감소는 대부분 AI 활용이 활발한 업종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반면 50대 이상 시니어층은 같은 기간 오히려 일자리가 늘었다.
이 현상은 AI 도입 초기에 나타나는 ‘연공편향(年功偏向) 기술변화’로 해석된다.
즉, 젊은 근로자의 정형화된 업무는 기술로 대체되기 쉬운 반면, 경험과 조직관리 능력을 갖춘 중장년층은 AI를 보완 도구로 활용하며 고용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청년 일자리는 21만1천 개 감소했으며, 그중 20만8천 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발생해 전체 감소의 98.6%를 차지했다. 반대로 50대 일자리는 같은 기간 20만9천 개 증가했는데, 이 중 14만6천 개(69.9%)가 AI 고노출 업종이었다.
특히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 출판업, 전문 서비스업, 정보 서비스업 등은 AI 확산 이후 청년 고용이 두 자릿수 비율로 급감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업은 11.2%, 출판업 20.4%, 정보 서비스업은 무려 23.8%가 감소했다. 반면, 같은 업종에서도 중장년층의 고용은 거의 줄지 않았다.
AI가 청년층을 빠르게 대체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초년 근로자들은 대체로 규칙이 명확하고 반복되는 지식 기반 업무를 맡고 있다.
이러한 ‘정형화된(codified)’ 작업은 생성형 AI나 자동화 알고리즘이 수행하기에 적합하다.
반면 경력이 쌓인 시니어는 사람 간 관계 조율, 조직 운영, 맥락 이해 등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과 사회적 기술이 필요한 영역에서 AI의 보조를 받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오삼일 한국은행 고용연구팀장은 “AI 확산 초기에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주니어 고용이 줄고 시니어 고용이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국내 청년층의 경우 정형화된 사무직 중심의 업무 구조가 기술 변화에 더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AI의 영향은 학력 수준에 따라서도 달랐다.
AI 활용으로 업무 시간이 줄어든 비율을 보면, 석사 출신이 7.6%, 4년제 대졸자가 5.0%로 가장 높았다.
이는 오히려 중상위 학력자가 AI 대체 위험이 크다는 의미다.
반면 박사(3.7%), 전문대(3.4%), 고졸(0.8%)은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었다.
지식 노동의 자동화가 대학 졸업자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보고서는 임금 조정보다 고용 조정이 먼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AI 확산 초기에는 임금이 경직적이어서 급여보다 인력 구조가 먼저 손대기 쉬운 현실 때문이다.
즉, 자동화로 인해 당장 임금이 줄지는 않더라도, 고용 자체가 줄어드는 구조적 위험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한은은 이번 분석이 단기적인 수치 이상의 함의를 갖는다고 경고했다.
AI가 기업의 인력 구조와 근로자의 경력 경로 전반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층 고용 위축이 이어질 경우, 향후 ‘미래 인재 파이프라인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기업이 청년 고용을 줄이는 대신 숙련된 시니어 중심으로 운영을 고착화할 경우, 산업 경쟁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
오 팀장은 “AI 확산은 단순히 생산성 향상을 넘어 노동시장의 구조를 바꾸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향후 청년층의 경력개발 경로, 기업의 인재육성 방식, 그리고 소득 불평등의 확대 여부에 중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AI의 발전은 더 이상 특정 산업의 변화에 머물지 않는다.
청년층의 경력 경로, 소득 구조, 사회의 세대 균형까지 재편하고 있다.
‘AI와의 공존’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 됐다.
지난 3년간 사라진 청년 일자리 중 98.6%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발생한 만큼,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사람 중심의 혁신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