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며, 어떻게든 자신의 빛을 발산하려 애쓴다. 빈 들판의 고요함보다는 화려한 도시의 소음을 선호하고, '쓸쓸함'은 애써 외면해야 할 부정적인 감정으로 치부한다. 우리는 '지는' 법을 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 이 시대의 강박적 존재 증명에 맞서 '사라짐의 미학'을 넌지시 건네는 한 편의 시가 있다.
바람이
마지막 들꽃 향을 데리고 와
빈 들판에 쓸쓸함을 심는다.
낙엽 하나
발끝에 머물다
노을 끝에 그림자로 스민다.
저물어 가는 빛 속에서
내 마음도
천천히 물든다.
시인은 먼저 거대한 자연의 섭리를 펼쳐 놓는다. 바람은 그저 부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들꽃 향'이라는 계절의 끝자락을 데리고 와 '빈 들판'에 '쓸쓸함을 심는다'.
이 쓸쓸함은 인위적인 감정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이 가져다주는 필연적인 풍경이다. 시인은 이 쓸쓸함을 거부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저 '심어지는' 대로 가만히 받아들인다.
2연은 이 시의 백미(白眉)다.
'낙엽 하나'는 고독과 소멸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낙엽은 격렬하게 흩날리거나 썩어 문드러지지 않는다. 그저 발끝에 잠시 머물다, '노을 끝에 그림자로 스민다'.
'스민다'는 이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사라진다(消滅)'는 단절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경계가 허물어진다(浸透)'는 합일(合一)의 언어다. 낙엽은 노을빛과 그림자라는 거대한 풍경 속으로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며, 그 일부가 된다. 이는 패배가 아닌 성숙이며, 죽음이 아닌 완성이다.
그리고 마침내 3연에서, 이 모든 풍경은 관조(觀照)에서 공감(共感)으로, 다시 합일(合一)로 나아간다.
"저물어 가는 빛 속에서 / 내 마음도 천천히 물든다."
시인은 더 이상 풍경의 바깥에 서 있는 관찰자가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날카로운 경계를 허물고, 저물어 가는 빛과 스며드는 낙엽과 빈 들판의 쓸쓸함 속으로 자신을 내어준다.
우리는 '물들이는' 주체가 되려 하지, '물들어 가는' 대상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 시는 정반대의 화두를 던진다. 자신의 빛을 고집하는 대신, 저무는 빛에 기꺼이 자신을 맡길 때 비로소 얻게 되는 평화가 있음을 선언한다.
이 시가 주는 깊은 울림과 감동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억지로 빛나려 발버둥 치는 현대인들에게, 기꺼이 '그림자로 스며들고' '천천히 물들어 가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용기임을 도전한다. 그것은 쓸쓸함과의 화해이며, 유한한 존재가 영원한 자연과 하나 되는 가장 고요하고도 강인한 방식이다.
이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노을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