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선의 산사기행] 대문산 대흥사

전승선

자주 꽃 핀 건 

자주감자

따보나 마나 

자주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감자

따보나 마나 

하얀 감자

 

남한강을 바라보며 서 있는 탄금대에 ‘감자꽃 노래비’가 있다. 독립운동가이며 시인인 권태응 선생이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을 반대하며 부른 노래다. 창씨개명을 한다고 한들 조선인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노래가 충주 사람들의 충절을 대신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탄금대는 빼앗기고 뺏기는 약육강식의 역사가 오백 년 전 임진왜란에도 상흔을 남긴 곳이다. 아름다운 남한강은 역사를 강물 깊이 간직하며 흐르고 있을 터이지만 짐짓 모르는 척 불어오는 바람과 노닐면서 시간의 유희에 빠져 있었다. 

 

그 지난한 역사의 현장이 된 탄금대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보면 비극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 새겨진 역사의 슬픔은 잊을 수 없는 기록이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은 8,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가장 큰 대규모의 전투인데 이 전투에서 신립 장군이 패하자 조선 조정은 몽진을 결심하고 선조는 의주로 도망쳤다. 그리고 패장인 신립 장군은 강물에 투신해서 자결했다. 나는 이 탄금대가 있는 남한강이 보고 싶어 무작정 떠나왔다. 

 

남한강 물줄기를 따라 소나타를 몰고 천천히 충주까지 닿았다. 이 아름다운 남한강을 바라보며 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낭만에 취해 있었다. 낭만은 남한강에서 시작하고 남한강에서 종결짓는다고 혼자 웃어보다가 문득 탄금대를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남한강 야트막한 대문산에 있는 탄금대는 기암절벽이 척척히 둘러싸여 있고 그 절벽을 따라 흐르는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 함께 어우러져 가히 절경 중의 절경이었다. 

 

통일신라의 우륵이라는 가야금 명창이 충주에 정착해 음악 활동하면서 살게 되었는데 왕은 법지, 계고, 만덕이라는 청년들을 뽑아 우륵에게 음악을 배우라고 했다. 우륵은 이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굴해서 각기 춤과 노래와 가야금을 가르쳤다. 우륵은 가끔 남한강 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며 풍류를 즐겼는데 사람들은 가야금의 미묘한 소리에 이끌려 이곳에 마을을 이루고 가야금을 탄 곳이라는 뜻의 탄금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세계조정선수권대회가 열릴 만큼 수량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탄금대를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북쪽 계곡 끄트머리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충장공신립장군순절비각이 있었다. 이 비 옆에 갓 시집온 여인처럼 다소곳이 앉아 있는 대흥사를 발견했다. 아, 탄금대 안에 절이라니, 나는 너무 반가워서 얼른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합장했다. 대흥사는 숨바꼭질하다가 집안 구석에 서 잠들어 버린 것처럼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 숨은 듯 있었다. 나는 마치 술래가 되어 꼭꼭 숨은 아이를 찾기라도 한 듯 기뻐서 얼른 경내를 둘러보았다. 

 

신라 진흥왕 때 거란의 침략으로 소실된 용흥사 자리에 오법우 스님이 1956년 3월에 대흥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대흥사가 기대앉은 산이 대문산이다. 지금은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곳이라 하여 탄금대로 부르고 있다. 종교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대흥사를 보면 애잔함과 위대함이 동시에 교차할 것 같다. 역사의 상흔에 얼룩진 영혼들이 굽이굽이 남한강을 흐르고 흐르다가 탄금대에서 잠들었는데 그 탄금대 북쪽 계곡 끄트머리에서 대흥사를 만나 안위를 찾았는지 모른다. 

 

나는 대흥사 대웅전 댓돌에 잠시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자주 꽃 핀 건 자주감자라고 노래하던 이들의 슬픔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좋은 나라 좋은 시절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흘러가는 저 남한강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마는 것이 인생이겠지만, 한 나라도 또 한 개인도 쓰러지는 게 죄가 아니다. 다시 일어서지 않는 게 죄다. 고난 끝에 반짝이는 별이 있듯이 나는 우연이 대흥사에 와서 잠시 마음을 멈춰 본다. 그리고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대웅전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구름이 하늘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전승선]

시인

자연과인문 대표

이메일 : poet1961@hanmail.net

 

작성 2025.11.14 11:02 수정 2025.11.1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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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