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칼럼] 살아가야지… 사랑해야지…

홍영수

영화관에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영상 위에 엔드마크가 찍힌다. 방금 보았던 슬픈 영화의 눈물도, 기쁘고 웃긴 영화의 웃음도 함께 엔드마크에 실리면서 공허함을 느낀다. 이렇듯 모든 길에는 끝이 있듯 우리의 삶 또한 끝이 있다. 시냇물과 강물의 마지막 도착지는 바다이듯이 생명 있는 것들의 삶 속에는 모든 시간의 끝과 종말, 즉 죽음이 있을 뿐이다. 하루든, 계절이든 한 해가 끝나가는 12월이든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다. 지난날의 빛과 어둠의 모습들, 뙤약볕의 여름과 오색의 단풍, 천둥과 번개와 눈보라 휘날리는 달력의 낱장이 사라지는 그게 우리들의 죽음이다. 

 

“사람들은 흔히 시작을 원인으로 생각하고 끝을 그 결과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그것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 말인즉슨 끝은 시작하는 순간 속에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2월 31일 밤 12시를 전후한 1초 전과 후는 한 해가 끝나는 순간 바로 또 다른 한 해가 시작하는 순간이 된다. 

 

오늘, 아파트 사잇길을 걸었다. 차가운 바람에 형형색색의 가로수 잎들이 떨어져 있고 또 떨어지는 중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해도 내년에도 여전히 같은 모습일 것이다. 낙엽이 진다는 것은 머지않아 새잎이 돋는 것이고, 새잎이 돋는 것은 낙엽으로 진다는 뜻이다. 나뭇가지에 맺힌 은행이라는 열매가 곧 꽃의 시작이듯이…

 

얼마 전, 지인의 모친상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때가 되어 왔다가 때가 되어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진리를 누구나 모르지 않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할 때는 슬픈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천상병 시인의 시구처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고, 나 또한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의 인생이란, 망자와 생존자 사이를 살아가고 있는 초상집 풍경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장자》의 ‘지락(至樂)’ 편을 보면, 장자는 자신 아내의 죽음 앞에서 곡을 하기는커녕 친구인 혜자한테 말하기를 “처음 아내가 죽었을 때 나도 어찌 슬프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는 본래 생명이 없었다. 생명이 없던 상태에서 氣를 얻어 형태를 이루고 생명을 얻은 것이다. 이제 그 기가 변하여 다시 죽음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이는 마치 사계절이 변하듯 자연스러운 일인데, 내가 어찌 통곡하겠는가? 나는 이것이 천지의 이치임을 깨달았기에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했다. 생각건대 장자는 아내의 죽음이 단순한 슬픔이 아닌 삶과 죽음을 우주 속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존재의 소멸이 아닌 순환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는 그의 통찰력이 눈에 띈다.

 

李白(이백)의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에서 읊조린 시구에서도 

 

夫天地者萬物之逆旅(부천지자만물지역려) 

光陰者百代之過客(광음자백대지과객)

而浮生若夢(이부생약몽)

爲歡幾何(위환기하) 

‘대저 천지는 만물이 잠시 쉬었다 가는 여관이고, 시간은 영원한 나그네이다.

덧없는 인생은 꿈과 같으니 즐거움을 누림이 그 얼마인가? ’

 

얼마 전까지 빛나던 대낮의 존재는 황혼 속에 죽어버리고, 현재의 존재가 과거의 존재가 되고, 기억 속의 기억들은 우리들의 기억 거리가 된다. 이렇듯 시간은 다른 시간을 죽이고 다른 시간은 또 다른 시간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래도 우린 살아가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자신의 실체를 의심한다. 그 이유는 안개 낀 듯한 눈과 자꾸 도망가려고 하는 정신 줄, 차츰 뒷걸음질하는 기억력 등등, 이 모든 것들이 흐려지고 모호하게 되면서 경계선이 흐려진다. 낮과 밤이 섞이고 심지어 삶과 죽음도 섞인다. 이러한 슬픈 현실이 노크하더라도 이럴 때일수록 고통과 고뇌에 찬 삶의 버튼을 꺼놓고 잠시 쉬었다 가는 천지의 여관에서 고요한 내면의 우주 속을 들여봐야 보자. 

 

얼마 전까지, 

그토록 아름답게 물들었던 단풍의 모습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없는 것일까?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5.12.01 10:45 수정 2025.12.0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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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