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신화극장] 오대산 노인봉의 ‘흰 수염의 신령’
안녕하세요, 김미희입니다. 오늘은 깊은 산공기 속으로 젖어들 듯, 고요가 은빛 먼지처럼 흩날리던 시절의 오대산으로 함께 걸어가 볼까요? 그중에서도 노인의 이마처럼 주름지고 단단한 능선을 이룬 노인봉에는, 오래도록 바람이 지켜온 전설이 숨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Let’s go.
아득한 옛날,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들은 서로 다른 숨결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동쪽 끝, 해가 가장 먼저 걸려드는 봉우리는 세상을 굽어보는 노인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늠름한 산의 지혜’라 불렸지요. 하지만 그때까지 이 봉우리에게는 정작 이름이 없었습니다.
어느 겨울, 산새들도 날갯짓을 멈추고 숲이 한순간 숨을 삼킨 듯 고요해졌을 무렵, 흰 수염의 신령이 눈발 속을 헤치며 봉우리 꼭대기에 올랐다고 해요. 그는 인간 세상에서 흘러오던 시름의 냄새가 산맥을 울리고 있는 것을 듣고, 잠시나마 그 근심을 덜어주고자 오래된 지혜를 한 줌 꺼내어 바람 속에 풀어놓았습니다. 그 순간, 봉우리의 능선은 마치 백발이 반짝이듯 은빛으로 물들고, 눈은 기도문처럼 잔잔히 내려앉았지요. 산 아래의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서로 속삭였다고 합니다.
“저 봉우리는 마치 세상을 내려다보는 노인의 얼굴 같다… 그 지혜가 우리에게 닿을 수 있을까?”
그날 이후, 봉우리에서는 사계절 내내 달빛처럼 은은한 기운이 흘러나왔다고 해요. 숲길을 걷는 이는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고, 오래 묵은 상처도 부드럽게 닦여나가는 듯한 평온함을 느꼈다고 전해집니다. 사람들은 그 영험함을 ‘노인의 숨결’이라 부르며 봉우리의 이름을 노인봉이라 정했지요.
하지만 신령의 발자국이 언제까지 남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그의 기운은 산기슭의 안개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고, 세상은 다시 소란스러워졌지요. 그럼에도 노인봉의 새벽은 여전히 닫힌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둠이 걷히기 직전, 봉우리에 닿은 첫 햇살은 오래된 지혜의 편린처럼 은빛으로 반짝이며, 등산객들은 늘 말없이 숨을 고르곤 하지요.
“짐을 내려놓고 가라. 산의 지혜는 언제나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현재와 과거가 투명한 막처럼 맞닿으며 잠시 멈춰섭니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신령이 남긴 마지막 마음, “이 봉우리에 오는 자, 하나의 무게를 덜고 돌아가길” 바라던 그의 오래된 기도였을지도 모르지요.
[3분 신화극장]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코스미안뉴스 김미희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