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갇혀버린 길

때 이른 개나리꽃. 사진; 최영미

며칠 전 수도권에 내린 첫눈으로 당일 교통사고 신고가 폭증했다죠?

손톱에 물들인 봉숭아 꽃물과 첫눈의 인연을 떠올릴 새도 없이 순식간에 쌓여버린 눈에 배달 가던 오토바이가 미끌거리더니 넘어집니다. 차창 문을 열고 괜찮냐 물어보려는데 분노의 포효를 내지릅니다. 넘어져서 아픈 것보다 뒤꽁무니에 매단 박스 안에서 뭉개졌을 음식들로 화가 났을 운전자가 그래도 성한 몸으로 일어나 옷에 묻은 눈을 털고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니 다행입니다.

 

저도 이리저리 미끌거리며 평소보다 세배나 걸려 집에 도착했답니다. 염화칼슘을 뿌릴시간도 없이 퍼붓는 눈에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때아닌 개나리꽃이 활짝 펴서 눈을 맞고 있으니 날씨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길에 강아지와 나란히 첫 발자국을 찍고 눈사람을 만들고 눈썰매 타던 추억으로 마냥 눈을 즐기고픈데 기상이변은 매 순간 기록을 경신합니다.

  

추억하나 소환해 볼까요.

10년 전 종로구 홍지동 상명대학교 부근에 살 때인데요. 뒷산이 북한산이라 눈이 내리면 장관입니다. 나뭇가지마다 소담스럽게 쌓여있는 눈들이 달빛을 받아 그림자를 만들면 또 다른 곳이 됩니다. 그늘이라 잘 녹지도 않고 한동안 백야가 이어지는데요.

      

한 번은 밤 11시에 퇴근해서 빨간색 플라스틱 눈썰매를 끌고 반려견 두 마리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5분 정도만 올라가면 적당히 비탈진 둘레길이 있어 눈이 오면 여기서 썰매를 타자하고, 눈썰매도 준비해 두었습니다반려견들은 흥에 겨워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고 저는 남편과 번갈아가며 서로 썰매를 끌어주었습니다.

 

걸을 때 무릎 높이에 있어 눈에 띄지 않던 키작은 나뭇가지와 덤불에 쌓여 있던 눈을 썰매가 지나가며 흔드니 반쯤 누운 제 얼굴위로 고스란히 눈을 털어냅니다. 길쪽으로 향한 낮은 가지들이 뿌려주는 눈을 맞으며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옷이 눈으로 범벅이 되고 손은 곱아 얼얼하고 볼이 빨개져서 돌아오던 그 밤, 밤바람은 찼지만 모두 잠들어 인가의 불빛은 꺼지고 오롯이 달과 나무와 반려견들과의 은밀하고 신박했던 놀이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경사진 곳이 많아 자칫 방향을 잘못 잡아 미끄러지면 최소한 골절인데 오십 가까운 나이에도 그런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던 게죠.

 

몇 년사이 기후이변으로  여유있게 눈을 감상할 기회마저 줄어드는 듯하니 탄소발자국을 꾹꾹 남기며 살아서 인가 싶어 씁쓸해집니다.


  K People Focus 최영미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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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12.07 23:26 수정 2025.12.30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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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