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용 (수필가/철학자)
빛 광光 자도 넓을 광廣 자도 아닌 밝을 광曠 자를 썼습니다.
이육사는 자신의 〈광야〉가 발표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1904년에 태어나서 1944년에 죽은 한 많은 인생이었습니다. 민족의 한이 쌓이고 쌓였던 시기에 시인은 태어나고 죽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광야’를, 시인이 적어놓은 그 한자를 글자 그대로 옮겨 적으면서 시인의 의도를 곱씹어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왜 시인은 빛 광 자를 쓰지 않았을까?
왜 시인은 넓을 광 자를 쓰지 않았을까?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시인은 ‘까마득한 날’을 보았습니다. 그때 ‘하늘이 처음 열리고’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목 놓아 울어줄 닭조차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외로웠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토록 까마득했던 날에는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리고’ 있었습니다. 태초의 현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산맥도 이 땅을 건들지 못했습니다.
그러고는 시간이 쏜살처럼 흘렀습니다. ‘끊임없는 광음’을 보냈습니다.
‘광음’은 빛 광 자를 썼습니다. 시의 제목에서 언급된 밝은 광 자와 형태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다름의 의미를 추궁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비로소’ 상황이 변했습니다. ‘비로소’라는 말의 등장과 함께 그 이전과 그 이후가 차이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급기야, 드디어, 마침내, 이윽고 등의 개념들이 한 데 얽히면서 그 변화의 현상이 목격되었습니다. 시간이 연출하는 변화는 ‘자, 지금부터다!’ ‘자, 이제 시작이다!’ ‘자, 이제 출발이다!’ 등, 뭐 이런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비로소’라는 그 단어는 그것이 속한 하나의 행에서 중심을 차지합니다.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큰 강물이 보여준 길은 큰 길이었습니다. 그 큰 길을 밝힌 것은 이 들판이었습니다. 들판이 시선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 들판에는 큰 강이 흘렀고 그 큰 강은 큰 길로 인식되었습니다. 모두 ‘끊임없는 광음’이라는 무한한 시간 보내기의 결과였습니다.
‘비로소’를 중심에 둔 시선은 두 개의 방향을 동시에 바라보게 했습니다. 이전의 시선은 ‘까마득한 날’로 향했습니다. 무한한 과거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로소’가 개입하면서 그 이후의 시선은 무한히 뻗어 있는 길을 주목하게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무한한 미래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바라봄의 행위는 동일하나, 그 내용이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지금 눈 나리고 /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이육사의 〈광야〉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율이 흐릅니다. 꽃샘추위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광야’입니다. 밝은 들판입니다.
길이 보입니다. 그 길 위에서 시인은 먼 미래를 위해 노래의 씨앗을 뿌립니다.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 담겼습니다.
‘까마득한 날’로 향했던 시선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향하면서 ‘천고의 뒤’를 응시합니다.
그 먼 곳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꿈꿉니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바라봅니다.
시인은, 1920년 열여섯 살이 된 시인은 청산리전투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그 전선에서 백마 타고 지휘했던 김좌진 장군의 형상을 환상처럼 보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토록 큰 승전보를 전해준 그 승리, 전설 같은 그 승전보를 들었던 젊은 시인의 눈에는 희망이 싹텄을 것이 확실합니다.
‘까마득한 날’에는 울어주는 닭조차 존재하지 않았지만, ‘천고의 뒤’에는 초인이 울어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시인의 희망에 찬 역사관입니다.
목 놓아 우는 그 초인의 울음소리는 남다른 의미로 들릴 것이 확실합니다. 희망에 찬 닭의 기상나팔처럼 그 소리가 이 들판에 퍼질 것입니다. 빛을 바라보게 하는 노래가 될 것입니다. 울지만 노래를 부르는 소리로 인식될 것입니다.
희망의 노래가 이 들판을 밝힐 것입니다. 이 들판이 그 노래를 밝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