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짐을 꾸려 유후인에서 후쿠오카로 향했다. 기차는 이미 예약이 끝나버려 '유후인역전(由布院驛前) 버스터미널'에서 하카타로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후인역은 시간이 멈춰버린 추억의 간이역처럼 보였다. 역무원의 복장과 개찰 시스템은 역사책에서 보던 100년 전 일제시대 풍경 그대로였다.

곳곳에 온천수가 터져 역 앞에는 행인들이 따뜻한 물에 손을 담갔다가 지나가라고 수탕(手湯)을 마련해 놓았다. 버스터미널 뒷마당에는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온천수에 발을 담근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카타행 버스를 탔다. 10시 30분 출발인데 휴대폰 시계로 출발 시간을 체크해 봤더니, 단 1초도 오차가 없었다. 이게 진짜 일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이중구조의 나라다.
이틀 밤을 묵을 비스타호텔 나카스 가와바타점에 체크인을 했다. 우선 점심 요기를 하려고 소문난 맛집이라는 '이치란(一蘭) 라맨'에 들렀다. 한글 주문표가 있는데 매운 정도는 어떻게 할 것인지, 고기를 넣을 것인지, 밥을 추가할 것인지 등을 적어야 했다. 양계장 속의 닭처럼 칸막이가 쳐진 좁은 공간에서 라맨을 먹었다. 오타쿠들이 좋아할 것 같은 공간이다.
오후에는 일본의 사찰을 탐방키로 했다. 우선 동장사라는 절을 찾아 나섰다. 동장사는 9세기에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홍법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절인데 경내에는 목불인 후쿠오카 대불(福岡大佛)과 목조 5층 탑이 있다.

절 뒤쪽의 아름드리나무 숲속에는 구로다 타다유키를 비롯한 구로다 가문의 묘비들이 즐비하다. 구로다 타다유키는 임진왜란 당시 3군사령관을 맡았던 구로다 나가마사의 장남이다. 다들 지옥은 가기 싫었는지 여기저기 지장보살을 모셔 두었다. 절이라고 하지만 승려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은 서철(西鐵) 기차를 타고 난조인(南藏院)이라는 절에 들렀다. 일본에는 조동종 사찰이 대세인데, 이 절은 밀교 사찰이다. 청동 와불의 크기에 놀랐다. 이곳 주지 스님은 로또에 두 번이나 당첨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청동와불의 배 속으로 들어가면서 시주를 하면 즉석복권을 한 장씩 준다. 기발하지만 지극히 세속적인 마케팅 전략이다.

절대 암흑인 부처님 배 속에서 한발 한 발 나아가다가 한 가닥 빛이 보이는 곳에 이르면 작은 불상이 있다. 여기서 소원을 빌고 다시 대명천지로 나온다. 사찰 경내에 신사가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마치 우리나라 절에 산신각이 있는 것처럼 토속 신앙을 배려하는 차원일 것이다. 온종일 걸어 다녔더니 저녁엔 허기가 졌다. 가성비가 좋은 회전초밥집 쿠라에서 온갖 종류의 초밥을 먹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4일차 아침이 밝았다. 호텔식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기차를 타고 야나가와(柳川)를 향해 서쪽으로 달렸다. 야나가와는 말 그대로 수로 주변에 버드나무가 무척 많이 늘어서 있는 도시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연상케 하는 수로의 길이가 무려 930km나 된다고 한다. 에도시대 야나가와 번(藩)의 성곽도시였던 이곳은 당시 만든 수로와 마을 구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는 사공은 대나무 삿대를 하나 들고 있었다. 동력선은 아예 없고 노 젓는 배도 없었다. 물은 맑고 바닥에 수초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이 보였다. 이 수초들 사이에 장어가 산다고 한다. 장어 서식지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대나무 삿대 배인 돈코부네(どんこ舟)만 다니고 있었다.
뱃놀이를 하려고 표를 사서 배에 올랐다. 작은 배에 15명 정도 타는데, 자칫 균형이 깨지면 전복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을 벗어 비닐봉지에 넣어라는 걸 보니 물에 빠지면 헤엄쳐서 탈출하라는 무언의 신호가 틀림없다.
배는 수로를 따라 미끄러져 나가는데 서투른 영어로 해설을 하는 사공이 정겹고 익살스러웠다. 흥이 나면 노래를 한 곡조 뽑기도 했다. 수로 주변에는 아열대 과일인 오렌지가 노랗게 매달려 있고 아름드리 단풍나무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한국에는 북극 한파가 내려왔다는데 여기는 포근한 영상의 날씨다.
배에서 내려 야나가와에서 제일 유명한 와카마쓰야 장어덮밥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살살 녹는 장어덮밥에 사케 한 잔을 걸치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되고 말았다. 하수들은 된장 고추장을 싸 들고 해외여행을 다니지만, 가는 곳마다 현지의 별미를 즐기는 사람이 진정한 여행의 고수가 아닐까.
오후에는 학문의 신을 모셔 놓았다는 다자이후 신사를 탐방했다. 수험생들과 부모들이 시험을 잘 치르게 해달라고 전국에서 몰려드는 곳이다. 우리나라 부모들도 자식 수능 100일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기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진정한 학문의 신이 있다면 여기 올 시간에 공부나 하라고 일갈하지 않았을까.

다자이후 신사에는 신령한 소(御神牛)라 불리는 상징적인 동물 조각상이 있다. 이 조각상에는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온다. 미치자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다자이후로 유배되어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그가 죽은 후 시신을 황소가 끄는 수레에 실어 장지로 옮기려 했는데, 소가 갑자기 한 지점에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 그 자리에 미치자네를 모시는 신사인 다자이후 신사를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 다자이후의 소는 길을 인도한 신의 사자로 여겨진다. 신사 입구는 물론 경내 곳곳에 이 소의 조각상이 있는데, 이 청동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지혜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머리가 나쁜 관광객들이 얼마나 만졌는지 머리와 뿔이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장난기가 도졌다. 뿔을 잡고 힘을 겨뤄 보기도 하고 콧구멍도 쑤셔 보았다. 결국 사진을 찍던 아들 녀석은 빵 터지고 말았다.
저녁에는 강변의 포장마차촌으로 갔다. 젊은 여행객들이 인산인해인데 반은 우리나라 말을 하고 있었다. 밤새 음주 가무를 즐기는 K-컬처를 따라올 민족과 문화는 없을 것이다. 퇴폐적인 냄새가 나는 뒷골목 입구에는 호객행위를 하는 젊은 여자애들이 삼삼오오 진을 치고 있었다. 이제 객기를 부릴 나이는 아니라 호텔로 돌아왔다.

후쿠오카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해가 돋았다. 호텔식으로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가기 전에 구시다 신사에 들렀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되어 있다는 풍문이 있는 신사인데 확인할 길이 없다. 여기서 이번 여행의 마침표를 찍고 그리운 대한민국행 비행기를 탔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가끔 여행을 떠나야 한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