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피어난 사랑과 생존의 서사시
이금이 작가의 장편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한 장의 오래된 사진에서 시작됐다.
하얀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은 세 명의 젊은 여성.
그들은 하와이로 떠나는 배를 타기 전, 사진관 앞에 서 있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포즈가 아닌, 운명을 향한 마지막 다짐이었다.
1910년대 조선, 여성은 학교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 버들과 친구 홍주, 송화는 그런 시대의 벽을 넘어섰다.
그들은 오직 “사진 한 장”을 들고 태평양을 건넜다.
낯선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그 이름조차 기록되지 못한 여성 이민자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그들의 사랑과 생존을 하나의 서사시로 되살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버들은 일제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의병의 딸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그녀는, 더 나은 삶을 향한 마지막 선택으로 ‘사진결혼’을 택한다.
사진 속 남편 태완은 믿음직스러운 청년처럼 보였지만, 낯선 하와이에서 마주한 현실은 혹독했다.
사탕수수밭의 노동, 백인 관리자의 차별, 일본인 노동자의 냉대.
그녀가 마주한 하와이는 약속된 천국이 아니라, 또 다른 식민지였다.
그러나 이금이 작가는 이 고통의 기록을 절망으로 그리지 않는다.
버들과 그녀의 친구 홍주, 송화는 좌절 속에서도 연대하고, 서로의 삶을 지탱한다.
그들은 ‘이민 노동자’이자 ‘딸’, ‘아내’, ‘어머니’, ‘여성’이라는 복합적 정체성을 품은 존재로,
역사 속 ‘작은 사람들’이 가진 거대한 용기를 증명한다.
‘알로하’는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다.
이금이 작가는 소설 속 대사에서 “알로하에는 사랑, 존중, 인내, 겸손의 뜻이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버들이 하와이에서 만난 여성 공동체는 바로 그 알로하 정신의 실천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때로는 가족보다 더 깊이 연결된다.
줄리 엄마의 지혜, 홍주의 당당함, 송화의 순수함은 버들의 삶에 빛이 된다.
낯선 땅에서 서로를 ‘엄마’라 부르며 만들어가는 그들의 연대는,
이민의 고통을 넘어선 새로운 가족의 형태로 확장된다.
이금이 작가는 “여성은 약하지 않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그 침묵의 공간을 문학으로 메운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이민 여성의 용기와 연대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다시 새겨야 할 가치다.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시대, 이금이의 소설은 ‘알로하’의 정신 — 배려, 조화, 환대 — 를 통해
진정한 공존의 의미를 일깨운다.
버들과 그녀의 친구들이 사탕수수밭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버텼던 것처럼,
우리 역시 낯선 세계 속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야 한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역사소설을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문학적 선언이자 따뜻한 위로의 꽃목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