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 인문학] 땡땡이치고 싶을 때, 마부작침!

연못 속의 물고기 한 마리가 천천히 헤엄을 치다 가장자리 벽에 머리를 부딪히자, 천적을 만난 줄 알고 배를 뒤집어 죽은 척했습니다. 누군가 물고기의 마음을 이렇게 읽었습니다.

 ‘뭐야? 또 너야? 그래 잡수셔.’

그러곤 한 마디 덧붙입니다.

 ‘출근하는 것보단 낫다.’


건국 이래 가장 높은 취업 난이도를 뚫고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게 구한 직장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도 출근입니다. 


이태백으로 알려진 당나라 시대의 뛰어난 시인, 이백도 젊은 시절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산속에 있는 학당에서 매일 매일 공부하는 게 지겹고 힘들어서 어느날 땡땡이를 치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집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야 했는데, 강가에 한 노인이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 열심히 만들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겨 다가가 보니 도끼를 숫돌에 갈고 있는데, 날이 충분히 섰는데도 멈추지 않는 거였습니다. 이백이 연유를 물으니, 바늘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이백은 웃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아냥거렸죠. 그런데 노인은 이미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중간에 멈추지 않으면 바늘이 되겠지요.’라고 응수했습니다. 이백은 크게 깨닫고 다시 학당으로 돌아가 훗날 최고의 시인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마부작침’입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이지요. 


12월 14일 일요일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의 송년회에서 정예서선생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시작할 때는 들뜬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곧 푸념하고 그만두고 싶어지는 이유가 좋은 것만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시작의 설렘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생각지도 못한 고난과 좌절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마음까지 함께 먹으면 작은 바람에도 뒤집어지는 나뭇잎이 아닌 태풍에도 살아남는 나무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2026년엔 ‘마부작침’을 새겨달라 당부하셨습니다.


이제 곧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새해와 함께 리셋버튼을 누른 듯 묵은 고민과 갈등이 다 청산되면 좋겠지만, 같은 해는 다시 뜨고 출근은 해야 하고, 학교도 가야 하고, 지루한 일상을 책임지는 나날은 계속됩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어 보신 적 있나요? 말 그대로 ‘난중’, 전란 중에 쓴 일기이니 얼마나 긴장감과 급박함이 넘칠까,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할 겁니다. 툭하면 식은땀을 팥죽처럼 흘리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하느라 밤잠을 설치다 아침 댓바람부터 윷으로 척자점을 치고, 실수하고 속상해하고 화도 내고 짜증도 내는 모습을 보면 이 시대의 지병이 있는 중년의 팀장급 직장인의 일기와 흡사합니다. 언제 영웅적인 모습이 나오나 지쳐갈 때쯤, 소소한 일상의 기록이 한 달, 일 년, 이 년, 삼 년을 넘어가면서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내용 없이 그냥 ‘맑다’, 날씨 한 줄만 쓴 날도 있는데, 그에게 하루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진땀을 뺀 하루이거나 기쁜 소식으로 행복한 하루이거나 적을 거 하나 없는 무료한 하루이거나 어떤 하루도 다른 하루에 대해 비교우위를 가지지 못합니다. 어제가 오늘보다 더 가치 있고 오늘이 내일보다 더 못한 그런 하루는 없으니까요. 위기의 순간, 영웅으로 살 수 있었던 이순신 장군의 저력은 하루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 건 아닐까요? '마부작침'의 과정처럼 더디고 재미없는 일상을 변함없는 마음으로 보낸다는 건 쉬워 보이지만, 전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땡땡이치고 싶은 마음을 다잡으며 오늘도 출근에 성공한 여러분은 영웅의 여정에 참여한 셈입니다. 우리를 비범하게 만들어 주는 건 꾸준히 지속하는 힘이니까요.


K People Focus 차경숙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함께성장인문학연구원 수석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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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5.12.23 07:59 수정 2025.12.23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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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