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도, 이따금 가슴 저미는 먹구름이 내려앉을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짐, 알 수 없는 불안감, 미래에 대한 막막함, 혹은 과거의 잔상이 드리운 슬픔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는 이 짐을 벗어던지고자 발버둥 치고, 어떻게든 가벼워지고자 애쓴다. ‘무게’란 곧 삶의 고통과 동의어처럼 느껴지는가? 벗어던질 수만 있다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떤 날은, 지워지지 않는 듯했던 그 무게를 기꺼이 끌어안고 묵묵히 걷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경험을 한다. 마치 마른 낙엽이 발치에 바스락거리며 속삭이는 옛이야기처럼, 혹은 깊은 산길에서 불어오는 솔바람처럼, 그 고요함 속에서 예기치 않은 위안이 찾아오는 순간들 말이다. '발걸음이 무거워질수록 마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더없이 가벼워지는 경험'이라니, 언뜻 모순으로 들리는 이 감각은 우리 삶의 가장 깊은 역설을 품고 있다.
과연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움'은 단순히 피해야 할 대상인가? 이 글은 삶의 짐이 때로는 예상치 못한 '아이러니한 가벼움'을 선물하며, 우리를 진정한 위안과 깊은 성장의 길로 이끄는 신비로운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여정을 통해, 가장 무거운 짐을 안고 가장 가볍게 날아오르는 법을 배우는 지난한 여정을 함께 탐색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 눈에 보이는 짐도 있지만, 대개는 형체가 없는 '마음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아득한 미래에 대한 불안,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완벽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순간들. 이 모든 것들은 현대인을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중력과 같다. 마치 도심의 소음처럼, 우리 내면의 고요함을 산산조각 내며 끝없이 번잡함을 선사한다. 그 짐들이 던지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피하고 싶거나, 혹은 당장이라도 벗어던지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외면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잠깐의 안도만을 줄 뿐, 문제의 본질을 해결해 주지 못하며 결국 더욱 깊은 나락으로 이끌 뿐이다.
하지만 삶의 역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무거운 짐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고된 여정'이 곧 '아이러니한 가벼움'으로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여정은 단순히 체념하거나 수동적으로 포기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짐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무게를 온전히 느끼며, 내 삶의 한 부분으로 포용하려는 능동적인 의지이다. 우리가 깊은 산길을 오르며 한 걸음 한 걸음 무거움을 견디는 것처럼, 삶의 짐과 동행하는 시간은 자신의 내면을 깊이 탐색하는 '마음 순례'와 같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문제의 본질을 보다 선명하게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직면과 수용의 순간, 신기하게도 우리의 마음은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진다. 짐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짐에 대한 우리의 '관계'와 '관점'이 변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암벽 앞에서 우리의 시간이 '한 점 먼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을 때 얻는 겸허함처럼, 우리는 문제 앞에서 발버둥 치는 대신 그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저항하던 힘을 내려놓는다. 마치 꽉 쥐었던 주먹을 펴는 순간 긴장이 풀리듯, 짐을 놓는 대신 기꺼이 짊어지는 태도의 전환이 우리를 억압하던 심리적 중력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이는 고통 속에서도 빛나는 통찰을 발견하는 순간이며, 두려움의 감옥을 열어젖히는 열쇠가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이러니한 가벼움'이라는 이름의 깊은 내적 평화를 얻는 것이다.
이처럼 짐을 감내하는 과정은 단순히 고통스러운 인내가 아니라, 우리에게 값진 '위안'과 '성장'을 선사하는 특별한 통로가 된다. 한때 우리를 절망케 했던 그 짐은, 이제 내면을 단단하게 다듬는 단련의 시간이 된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인내심을 배우고, 더 깊은 자기 성찰에 이르게 되며, 나아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짐을 짊어져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삶의 지혜와 강인함은 비로소 우리를 더욱 단단한 존재로 만든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중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향을 굳건히 잡을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짐’이 곧 나를 성장시키는 소중한 자양분임을 깨닫게 된다.
삶은 예고 없는 짐의 연속이다. 어떤 이는 세상의 모든 무게를 홀로 짊어진 듯 숨 가빠하고, 또 어떤 이는 그 짐 때문에 주저앉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글을 통해, 가장 무거운 짐을 마주하고 기꺼이 감내하는 지난한 여정이 역설적으로 가장 큰 위안과 '아이러니한 가벼움'을 선사함을 알게 되었다. 짐을 내려놓는 대신 온전히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순간, 우리를 짓눌러왔던 압력은 새로운 형태의 자유로 변모한다.
진정한 가벼움은 짐이 사라진 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짐을 안고서도 당당히 걸어갈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을 얻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고난이라는 씨앗이 있어야만 성장의 열매를 맺듯이, 우리의 짐은 나 자신을 더 깊이 탐구하게 하고, 주변 세계를 더욱 넓게 이해하는 소중한 자양분이 된다. 그리하여 한때 우리를 절망케 했던 그 무게는, 이젠 흔들리지 않는 삶의 지혜와 강인함이라는 선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혹 당신의 어깨가 짓눌리고 마음이 무겁다면, 그 짐을 외면하기보다 한 번쯤 온전히 마주해 보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당신만의 '아이러니한 가벼움'을 발견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인 '나의 삶'을 더 큰 사랑과 통찰로 채워나가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삶이란, 가장 무거운 짐을 안고 가장 가볍게 날아오르는 법을 배우는, 아름답고 역설적인 여정인 것이다.
[홍수민]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재학.
'제7회 코스미안' 인문칼럼 대상
'행복울주를 담다' 수필 부문 우수상
'2025 동대문구 문예공모전' 시 부문 우수상
2021년 서울시 동대문구청장 지역사회공헌 표창
이메일: sumcs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