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이름은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 지을 때 잘 지어야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시를 보아도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태어나면 작명가에게 가서 큰돈을 주고 이름을 짓는 부모들이 많았다. 음양오행의 획수를 따져 한자로 이름을 지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한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유행했다. 단비, 별이, 초롱, 주홍, 대한, 샛별, 은비, 백두 등이 대표적인 한글 이름들이다.
지금 팔십이 넘은 연세의 할머니들 중에는 성의 없이 지은 이름들이 많다. 미자나 말숙이는 예사이고 끝남, 끝분과 같은 이름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딸만 여섯 낳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딸은 끝내고 남동생을 낳겠다고 막내 이름을 끝남으로 지었는데 그다음에 또 딸이 나서 칠공주가 된 집안도 있다. 끝분이나 끝남이의 출생신고를 하러 가면, 면서기는 호적에 한자인 말남이나 말분으로 기재했다.
갑술년이나 정묘년에 태어났다고 갑술, 정묘 등으로 대충 지어준 이름도 있다. 몸에 점이 많다고 점만이, 점숙이, 점자와 같은 이름도 지었으나 이들이 장성하여 보니 부끄러워 개명한 사람도 많다. 항렬을 따른다고 일재 이재 삼재와 같이 우스운 이름을 지은 형제들도 있다.
이름에는 그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아래서 싸운 천민들 중에는 개똥이, 소똥이 넙덕이 등도 있었다. 그 당시 마당쇠나 돌쇠도 있었을 것이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이런 하찮은 이름의 애들은 병마가 잡아가지 않는다고 하여, 손이 귀한 양갓집에서도 별호로 이런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가 있었다.
윤동주는 북간도에서 별을 헤면서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을 불렀던 적이 있다. 북쪽은 이름을 지을 때 남쪽과 조금 다른 정서가 있는 것 같다. 북한 이름 중에는 금, 은, 동, 철, 혁이 들어가는 이름이 많다. 대부분 올림픽 메달을 연상케 하거나 쇠처럼 강하고 가죽처럼 질겨라는 염원이 담겨 있는 듯하다.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금혁 은혁 동혁 혁철 철민 만철 등의 이름이 그리도 많았을까.
부르기 좋고 듣기 좋은 이름이 진짜 좋은 이름이다. 남의 조롱거리가 되는 이름은 뛰어난 작명가가 지었다고 해도 좋은 이름이 아니다. 김 씨가 일성이나 정일로 이름을 지으면 당장 초등학교에 가서 놀림감이 된다. 초롱이라고 지은 이름도 멀리 내다보고 지은 이름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어릴 때에는 귀엽고 초롱초롱하지만 팔순이 넘어서도 초롱이라고 부르면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요즘 부모가 지어준 이름값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이스피싱 사기꾼들이 그렇고 국민을 괴롭히는 정치꾼들이 그렇다. 혹세무민하는 일부 학자들과 언론인들, 사이비 종교인들도 이름값을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죽을 때 어떤 이름을 남기고 갈 것인지 성탄절 전야에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본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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