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일기와 시의 경계를 분별하자
일기문에 시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면 타당할까? 일기문이 시일 수는 없다. 일기는 일기일 뿐이다. 개인 일상의 느낌과 체험적 사실은 시의 본령과 거리가 멀다. 시인의 일상적 사실을 기록한 글은 시의 자격을 획득할 수도 없다. 시와 산문의 경계쯤은 분별하자, 시와 일기의 경계쯤은 알고 쓰자. 굵은 기울임 글씨체에 주목해 본다.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 오늘 하루도 / 살아 숨 쉰다는 것 / 그러하겠지요 // (……) // 오늘도 하루를 보냅니다 / 다행히 / 무탈無頉합니다 / 그런가 봅니다
-「그런가 봅니다」 일부
어제도 내일도 아닌 / 오늘에 기대어 산다 // (……) // 하루해에 맡긴 삶 /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살 일이다
-「산다는 것」 일부
인용 시를 읽다 보면 마치 시인의 일기장을 읽는 듯하다. 그 이유는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시간성의 명사를 채택하여 진술했기 때문이다. 일기장에 늘 등장하는 시간성의 명사를 시에 장치하면 일기로 오해받을 수 있다. 아주 사소한 개인적인 일상의 느낌과 체험을 표출하는 것으로 읽힌다. 인용 시를 긍정적인 말로는 ‘일상의 성찰적 진술 시’이고, 부정적인 말로는 ‘일기’이다. 일기문에 행을 갈라놓은 것에 불과하다. 즉, 시의 탈을 쓴 일기이다.
2. 한자 관념어(개념어)를 타파하자
정상적으로 시를 수학하면서 오랜 습작기를 보낸 시인이라면, ‘한자 관념어를 타파하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만일 이를 채택하더라도 창작 수법과 시적 가치를 충분히 고려해서 신중하게 채택해야 한다. 그 신중함이 시적 고투이다. 한자 관념어를 채택했다고 무조건 수준 이하의 시라고 단정하는 것도 금물이다. 어떤 문예지(2, 3월호)에 실린 시편에 한자 관념어가 너무 많이 등장한다. 평자의 눈과 뇌세포의 유기적 작동을 의심해야 할 정도로 많다. 심각성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어 두 편만 언급한다. 한자 관념어에 굵은 기울림 글씨체로 표기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눈물과 고통의 바다, 흑암만이 깊어진다 / 대결과 미움, 젊음을 앗아가고 / 고국 떠난 이들의 절규, 하늘을 찌른다 / 무고한 생명, 사랑하는 이들의 희생 / 산과 들판에 피어난 슬픔의 꽃밭 / 미움과 증오는 번져가고, 죽음의 그림자 드리우니 // 누가 이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올까
-「포성 속에 핀 무지개」 일부
옥석 가리려고 세월 다 보낸다 / 때론 자기 뜻대로 못사는 것이 세상 / 운명에 맡기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라 // 선악은 바둑판의 흰 돌, 검은 돌 / 바둑을 두는 것은 의지에 의한 선택 / 의지와 노력이 운명을 만든다 / 운명이 쌓이면 숙명이 된다 // 흘러간 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 지나간 세월은 다시 안 온다 / 지나갈 일은 지나가라고 하라 / 과거에 집착하는 건 의미가 없다 / 지나간 일에 매달릴 시간이 없다
-「옥과 석」 일부
인용 시를 창작한 시인은 심각성을 알까? 알면 이런 시어를 채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에 철학적 관념화 표현을 담아야 하는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시에 철학적 의미와 가치를 담는 것은 맞다. 철학은 우주 현상, 자연 현상, 사회 현상, 인간 현상을 관념화하는 형이상학이다. 특히 인간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을 관념화한다. 그 반면에 시는 이런 관념어의 의미를 다양한 수사법과 표현법으로 풀어 나가는 함축적 글의 예술이다. 즉, 다층적 함의의 언어로 관념어를 풀어 나가는 글의 예술이다. 시와 철학은 둘 다 인문학에 속하면서도 관념어를 대하는 태도와 방향은 정반대임을 기억하자.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겸임교수
저서 : 평론집 10권, 이론서 3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