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유재란 시기 조선과 명나라 군사가 연합한 조명연합군은 육상 3로군과 수로군을 진격시켜 일본군을 공격하는 소위 '사로병진작전(四路竝進作戰)'을 실행하였다. 왜교성 전투는 사로병진작전에 의해 벌어진 여러 전투 가운데 하나로서 전라도 순천에서 1598년 9월 20일 ~ 1598년 10월 7일의 기간 동안 벌어졌다.
필자는 2025년 8월경 '왜교성 전투 시기 명나라 전투선 피해 규모'라는 제목의 글을 쓰면서 왜교성 전투와 관련한 사료와 대표적인 연구 자료를 소개한 적이 있다. 혹시 왜교성 전투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해당 글에서 소개한 사료와 연구 자료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왜교성 전투는 그 관련 내용이 상당히 방대하다. 이글에서는 왜교성 전투가 진행 중인 시기인 1598년 9월 30일(음력) 새로이 합류한 명나라 수군의 선박 규모를 살펴보고자 한다.
왜교성 전투는 1598년 9월 20일 조명연합군이 순천 왜교성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휘하 일본군을 육지와 바다 양쪽으로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육지에서는 도원수 권율 휘하 조선군과 명나라 제독 유정(劉綎) 휘하 명나라군이 왜교성을 공격하였고, 바다에서는 통제사 이순신 휘하 조선 수군과 명나라 도독 진린 휘하 명 수군이 왜교성을 공략하였다.
다음은 1910년대에 작성된 지도에 왜교성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이다. 과거 왜교성 전투가 벌어진 지금의 광양만 일대는 매립이 많이 진행되고 산업단지가 들어서서 본래의 지형이 많이 변화하였다. 1910년대 지도는 왜교성 주변 해안선의 본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여준다.

치열한 전투가 며칠 정도 벌어진 뒤 상황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는데, 9월 30일에 이르러 새로이 도착한 명나라 수군이 전장에 합류하였다. 다음은 새로 합류한 명나라 수군에 관해 서술한 『난중일기』의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8년 9월 30일
이날 저녁 왕 유격, 복 유격, 이 파총이 100여 척의 배를 이끌고 진에 이르렀다. 이날 밤 등불이 찬란하여 적의 무리가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원문] 是夕 王游擊福游擊李把總率百餘船到陣. 是夜 燈燭炫煌 賊徒破膽.
위 『난중일기』에 언급된 명나라 수군 장수 왕 유격, 복 유격, 이 파총의 이름은 각각 왕원주(王元周), 복일승(福日昇), 이천상(李天常)이다. 이들 명나라 장수의 신상은 신흠(申欽, 1566~1628)의 문집 『상촌집』에 기록되어 있다. 『난중잡록』과 『상촌집』의 기록에 따르면 왕원주, 복일승, 이천상은 사로병진작전 시기 수로군(水路軍)에 속하여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의 지휘를 따랐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25년 11월 28일부터 2026년 3월 3일까지 진행하는 전시회인 '광복 80주년 기념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에는 방대한 규모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들 전시 내용 중에는 위에서 언급한 『난중일기』의 1598년 9월 30일 기록도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위 『난중일기』 기록은 명나라 수군 장수 왕원주, 복일승, 이천상이 이끌고 온 명나라 선박의 숫자를 '100여 척(百餘船)'으로 서술하였다. '100여 척'은 정확한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 ‘100척 + 서너 척’으로 볼 수도 있고 또는 ‘110여 척’ 정도로 볼 수도 있는 모호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명나라 선박의 규모를 『난중일기』보다 조금 더 정확히 서술한 사료가 있다.
왜교성 전투에 직접 참전했던 또 다른 인물인 진경문(陳景文, 1561~1642)은 그 전투에서 겪은 바를 「예교진병일록」이라는 일기 형태의 글로 기록하였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1598년 9월 30일 명나라 수군 130척이 적의 성(왜교성) 머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130척'은 '100여 척'에 비하면 구체적으로 언급된 숫자이므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참고로 「예교진병일록」은 후일 진경문의 문집 『섬호집』에 수록되었으며, 이 책 『섬호집』은 현재 한글 번역본이 발간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난중일기』 비망록 가운데에도 왕원주, 복일승, 이천상이 이끌고 온 명나라 선박의 규모를 서술한 것일 가능성이 있는 기록이 존재한다. 『난중일기』 비망록은 편지, 장계 초안, 선물 목록 등이 수록된 자료로서 일기와는 성격이 다른 글이다. 이들 비망록은 기록한 날짜가 표시되어 있지 않으며, 『난중일기』 책 안 여러 곳에 산발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비망록이 기록된 날짜는 『난중일기』 안에 나타나는 위치나 그 내용을 통해 추정해볼 수밖에 없다.
『난중일기』 1598년 일기 제일 마지막 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비망록이 있는데, 명나라 선박의 종류와 숫자가 서술되어 있다.
사선 25척 (沙船 二十五隻)
호선 77척 (號船 七十七隻)
비해선 17척 (飛海船 十七隻)
잔선 9척 (剗船 九隻)
* 위 비망록의 원문은 『이순신의 일기』(박혜일 외 3명, 2016, 시와진실)에 수록된 원문을 참조하였다.
사선과 호선은 명나라 전투선으로서 고 김재근 교수의 명저 『속한국선박사연구』에서 자세히 소개되었으며, 인터넷에서도 관련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비해선과 잔선은 이에 관한 자료를 찾기 어렵지만 사선 및 호선과 마찬가지로 명나라 선박임을 짐작할 수 있다. 위 기록에 보이는 명나라 선박의 합계는 총 128척으로서 앞에서 살펴본 「예교진병일록」에 언급된 명나라 수군 130척과 그 규모가 거의 일치한다.
물론 위 비망록에 나타난 선박이 1598년 9월 30일에 왜교성에 도착한 명나라 수군 130척이라고 100%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규모가 거의 일치하는 점을 통해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많은 분이 잘 아시겠지만, 역사는 활용이 가능한 자료를 종합하여 사실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문이다. 아무쪼록 위 비망록에 나타난 명나라 선박의 숫자가 왜교성 전투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명확히 밝혀지기를 바랄 뿐이다.


[참고자료]
한국고전종합DB, 조경남(趙慶男), 『난중잡록(亂中雜錄)』
한국고전종합DB, 신흠(申欽), 『상촌집(象村集)』 권56, 「지(志)」-「천조선후출병래원지(天朝先後出兵來援志)
진경문(陳景文), 『섬호집(剡湖集)』, 「예교진병일록(曳橋進兵日錄)」, 2016, 국립광주박물관
박혜일·최희동·배영덕·김명섭, 『이순신의 일기』, 2016, 시와진실
김재근, 『속한국선박사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4
이종화⋅윤헌식, 「노량해전의 조명연합수군 규모」, 『군사』 126, 2023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