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아랑가ArangGA] 목마와 숙녀

유차영

2026년 새해가 밝았다. ‘해방광복 80년’의 기치를 들고, 뭔가 특별한 민족적인 대중문화예술 컨텐츠의 이노베이션과 터닝과 티핑의 모멘텀을 앙망하며, 영신했던 2025년은, 여느 해보다 더 강퍅하고 혹독한 사회 관계적 혼무상태의 꼬리를 매달고 송구 되었다.

 

다만, 21세기의 서막,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한 폐쇄적 보건의료 환경 속에서 날개를 단, ‘전통가요 트로트 경연 열풍’은 해를 더하면서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오픈 경연장과 SNS와 지상파 공중파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스핀 오프(spin off) 프로그램의 상업적인 기획연출의 의도와 과정과 현재진행형 사조와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트로트’라는 이름패를 단 ‘정통트로트, 국악트로트, 록트로트, 세미트로트, 엘레지트로트, 블루스트로트, 탱고트로트, 발라드트로트, 댄스트로트, 현대트로트, 퓨전트로트, 포크트로트, 발라드트로트...  혼무하다.

 

이 모든 이름을 하나로 묶어서, 그냥 ‘아랑가(ArangGA)’ 한 단어로 부르면 된다. 우리 민족의 고유하고 유일한 노래, ‘아리랑’에서 ‘아랑’을 차운하고, ‘가요’에서 ‘가’를 차운(次韻)하여 융합한 단어. 대한민국 특허청, 특허등록상표. 상표특허등록번호, 제 40-2426336호.

 

‘아랑가(ArangGA)’는 민족의 고유한 혼(魂)과 기(氣)와 얼(臬)을 융복합 하고, 전통 노래의 상징이면서 한(恨)과 정(情)과 화합과 치유와 재기의 에너지 원천인 동시에, 글로벌 K-한류의 대명사가 될 수 있는 용어다. 

 

상업적 기획연출과 민족전통문화예술의 자긍과 자존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상충되고 마찰되고 융화될까. ‘트로트,’라는 단어에 얽힌 기득권적 공감대에 대한 상대적인 깃발을 흔들고 싶다. 2026년 대한민국 전통가요 장르 명칭, ‘아랑가(ArangGA)’로.  

 

이런 맥락에서, 이번 칼럼은 1974년 박인희의 목청을 넘어온 아랑가(ArangGA)’ <목마와 숙녀>를 펼쳐드린다.

 

<목마와 숙녀> 가사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 그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 가을 속으로 떠났다 /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 정원의 초목 밑에서 자라고 /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 / 불이 보이지 않아도 / 그저 간직한 패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 우리는 처량한 목마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그저 낡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 목마는 하늘에 있고 / 방울소리는 귓전에 절렁거리는데 /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 목메어 우는데...

 

<목마와 숙녀> 아랑가(ArangGA)는, 서정시(抒情詩)가 대중가요로 통속화되어 날개를 단 것이다. 이러한 사조와 경향은 언제부터였을까. 1958년 손석우(1920~)가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곡을 붙인 것이 그 시초다. 박재란이 불렀는데, 아쉽게도 제작사도 불명이고, 음반도 발견된 것이 아직은 없다. 이후 1970년대부터 시(詩)가 가요 화(化) 된다.

 

<목마와 숙녀>도 이런 트렌드의 산물이다. 이 노래는, 1976년 근역서재(槿域書齋)에서 발간한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시집 표제 시에 토크(형식 멜로디를 붙여서 낭송한 곡이다. 시집 발간 10년 차, 박인환 타계 20년 차에 김기웅이 곡을 붙여서 박인희가 읊조렸다. 원곡은 1974년 박인희가 부른, 오아시스레코드사 노래다. 이 시가 써진 1955년은, ‘세계사가 그러한 것과 같이 기묘한 불안정한 연대였다’라고 쓴 박인환의 회고처럼 ‘험난한 현대사의 질곡 터널 속’이었다.

 

해방공간(1945.8~1948.8)으로부터 6·25전쟁 휴전(1950.6~1953.7) 후 불안정하던 시절을, 박인환은 질곡으로 표현했다. 시어는 적확하게 그 시대를 묘사했다. ‘좌절과 허무와 도전과 응전이 어긋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비극적인 현실 및 모더니즘 풍’, 시대 이념과 민중들의 감성을 함의하는 대중문화예술의 본성을 서술했다.

 

노랫말에 인용된 pessimism(비관주의)은, 최악(the worst)을 뜻하는 라틴어 pessimus에서 나온 말이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Voltaire, 1694~1778)가 독일 수학자 · 철학자인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1646~1716)의 맹목적(종교적) 낙관주의 개념을 조롱하기 위해, 풍자소설 『캉디드(Candide)』(1758)를 쓴 것에 대해 예수회(Jesuit) 비판자들이 볼테르를 비난하기 위해 최초로 쓴 말이다.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비관주의의 족장(the patriarch of pessimism)으로 불리기도 했다.

 

박인환은 1926년 인제에서 출생, 평양의학전문학교(1926년 설립)를 8.15광복으로 중퇴하고, 1946년 국제신문에 시 <거리>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그즈음 서울에서 ‘마리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였으며, 1948년 이정숙과 결혼 후, 자유신문사와 경향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은 한다.

 

그는 6·25전쟁 중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신호탄>, <고향에 가서> 등의 시를 썼고, 1955년 『19일 간의 아메리카』, 『박인환 시선집』을 출간하였으며, 이 시집에 <목마와 숙녀>가 수록되어 있다. 박인환은 1948년 김경린 · 김수영 등과 동인지 『신시론』을, 이듬해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였다. 이 시집은 한국 시단의 주류인 청록파시집이다.

 

청록파는, 1939년 문장 추천으로 시단에 등단한 조지훈 · 박두진 · 박목월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들은 각기 시작법은 다르지만,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의 염원과 가치를 성취하기 위한 공통된 주제’로 시를 썼다. 이 세 시인은 1946년 6월에 시집, 『청록집』을 함께 펴내면서 청록파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미당 서정주는 이들의 공통적 주제 때문에 자연파라고 불렀다.

 

박인환은 1956년 3월 17일, 시인 이상(李葙) 추모행사를 하며, 3일간 연속 과음을 한 후유증으로, 3월 20일 31세로 요절했다. 심장마비였다. 박인환이 운영한 ‘마리서사’는, 박인환이 여러 시인들과 어울리며 동인을 결성하거나,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서울로 상경한 후 집 근처 낙원동에서 운영한 서점이다.

 

훗날 모더니즘의 일파가 되는 시인들을 만나게 해 준 곳. 이 서점에는 시인 김광균, 김기림, 오장환, 장만영, 정지용 등과 소설가 이봉구, 김광주, 김수영, 양병식, 김병욱, 김경린, 조향, 이봉래 등이 드나들었다. 해방 직후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번성하던 서점이자 문인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노래 발표 당시 23세, 본명 박춘호인 박인희는 1945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70년 이필원과 <뚜와 에 무아>로 데뷔하였으며, 숙명여대 불문과 학생일 때 노래를 시작했다. 

 

그녀는 당시 생음악카페 미도파살롱 DJ였고, 이필원은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며 이곳에서 노래하는 가수였는데, 우연히 <Let it be me>를 박인희와 같이 부르게 된다. 이들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혼성듀엣 <뚜아 에 무아>가 탄생한다. 

 

이들은 외국 번안곡과 자작곡을 부르는 놀라운 화음으로 인기를 받았다. 송창식과 윤형주가 번안가요로 포크계를 사로잡았다면, 이들은 외국 번안곡뿐 아니라 자작곡들을 직접 부르면서 놀라운 화음으로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이들이 연인관계라는 잡지사의 스캔들 기사로 그룹을 해체하고 박인희는 솔로로 활동한다. 솔로로 활동을 하면서 <얼굴>, <목마와 숙녀> 등 토크 송(Talk Song)장르를 선도한다. 뚜아 에 무아(Toi Et Moi) 는 불어로 ‘너와 나’이다.

 

시와 유행가의 한계를 구분 지울 수 있을까. 대중가요 유행가 ‘아랑가(ArangGA)’ 가사는 해방광복 이전까지 가요시(정두수 · 조운파 등은 노래시라고 표현하기도 함)라 불렸다. 그 시절 작사자들 중 조명암 · 박영호 · 유도순 · 김억 · 이하윤 등이 시인이나 극작가이면서 대중가요가사도 썼다. 

 

대중가요가 된 시는,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김소월의 <부모>·<개여울>·<세상모르고 살았노라>·<예전엔 미처 몰랐어요>·<실버들>, 고은의 <세노야>, 김광섭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서정주의 <푸르른 날>, 정지용의 <향수> 등등 많다.

 

2026년은 해방광복 81주년이다. ‘~트로트’라는 이름패를 다는, 수많은 상업적인 기획연출의 깃발의 상대편에, ‘한국전통가요 장르 명칭, 아랑가(ArangGA)’의 깃발은 세운다.

 

‘도전한국인본부, 대한민국최고기록인증원’ 주최, 인터내셜널월드인코리아·세계도전재단·대한민국청년협의회 주관으로, 대한민국 최초 신 대중가요장르 <도전 아랑가상> 제정 선포식을 한다. 2026년 1월 24일, 14시. 서울특별시의회 대회의실에서.

 

2026년부터, ‘아랑가(ArangGA)’는, 대한민국 공식 문화브랜드다.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

 

작성 2026.01.05 11:09 수정 2026.01.0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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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