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 오벨리스크와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는 제국의 위상을 과시하는 기념비이다. 정복왕 파라오 람세스 2세와 광개토대왕의 치적을 기록한 비라는 점에서 유사점이 많다. 오벨리스크와 광개토대왕 비는 당대 정복왕의 치적을 기록하여 강성대국의 역사. 정치, 영토, 민족과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게 조각한 비석이다. 한 시대의 대제국을 형성한 정복왕인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어떤 인물인가 비교하여 연구할 가치가 있다. )
1. 오벨리스크와 람세스 2세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 숭배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로 네모진 거대한 원석 돌기둥이 위쪽으로 갈수록 가늘어지고 꼭대기는 피라미드 모양의 방첨탑(方尖塔)이 있다. 이집트는 태양신에 버금가는 파라오(왕)의 공적이나 치적을 기둥 4면에 상형문자로 그려 놓았다.
원조 오벨리크는 BC 3200년 전에 태양의 신 아토 레. 아몬을 숭상하는 첨탑으로 만들었는데 이집트 제4왕조(BC 2613경~2494)때 많이 세웠는데 남아있는 것이 없고 제5왕조 때 세워진 높이가 3.3m의 오벨리스크가 남아있다.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오벨리스크는 세소트리스 1세(BC 1971~1928)가 세운 것으로, 태양신 레(Re)의 사원이 있었던 카이로 교외의 헬리오폴리스에 있다.
그리고 람세스 1세가 최강국을 만들고 위업을 자랑하기 위하여 카르나크에 세운 1쌍의 오벨리스크는 높이 24m이고, 정4각형으로 된 밑바닥 길이는 1.8m이며 무게는 143t에 이른다. 그리고 19왕조 투트모세 1세(BC 1525경~1512)가 아랍의 땅 메소포타미아와 유프라테스강까지 점령하여 대영토를 넓힌 치적을 적었다.
이집트 19왕조 파라오 람세스 2세(AC 1303년~1213년)는 자신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화강암 원석을 깎아 가장 큰 방첨탑을 세웠다. 이 첨탑은 자신의 무덤 앞에 수호신 스핑크스와 함께 세웠다. 원형은 높이 42m 가로 2.36m, 세로 2.33m, 1,200t의 사각 원추형 판에 왕의 치적과 문화. 영토. 민족. 나일강의 지형 등을 조각해 넣은 것으로 파라오 람세스 2세의 위상을 표시하였다. 그 후 로마는 이집트를 점령하고 AD1587년 콘스탄티누스 2세는 이집트 카르나즈 오벨리스크를 라테라노산 조반니 광장에 옮겨 세웠다.
현재 존재하는 오벨리스크는 13개다. 한 시대의 열강들은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자국의 강성을 자랑하는 무기로 사용하였다. 이집트에서 착취하여 자국의 영토에 옮겨 강성대국의 상징적인 표적으로 삼았다.
현재 13기가 위치한 곳으론 프랑스 콩코드광장 1기. 영국의 템스강 변 1기. 미국의 센트럴 파크1기. 튀르키에 이스탄불 1기, 이탈리아 로마에 1기. 아프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1기. 이집트에 7기가 남아있다.
이렇듯 세계열강들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를 자국의 영토 내로 옮겨 국력의 위상을 과시하였다. 오벨리스크의 상징성은 위대한 지도자. 강력한 국가. 시대 문화를 주도한 국가로 자부하였다.
람세스 2세(AC1303년~1213년)는 누구인가?
이집트 19왕조 때 파라오로 대정복 왕이었다. BC 1500년경 아프리카와 페르시아를 제압한 대제국 이집트의 위상을 기렸다. 람세스 2세는 세티 1세의 아들이고 어머니인 투이이며 18왕조의 시조인 람세스 1세의 손자이다. 람세스 2세는 대제국을 만든 정복왕으로 람세스 대왕이란 파라오로 20왕조 때는 대영웅 파라오로 왕들이 그의 행적을 따르려고 하였다.
이집트는 나일강를 따라 남쪽에서 북쪽의 델타 지역에 이르기까지 기름진 방대한 땅에 찬란한 유적을 가진 나라였다. 모두 람세스 2세가 이룩한 유산이다. 재위 66년을 지낸 파라오로 자신의 흔적을 이집트 전역에 남겼다. 나일강의 유적지나 신전, 묘에는 벽화나 부조각으로 그의 공적을 치앙하였다. 정복왕 람세스 2세는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이집트 서쪽의 리비아로 국경지대를 장악하였고, 동쪽으론 이란의 히타이트까지 정복하였다.
그 바탕은 투트모세 3세가 확보한 땅을 확보하고 더 크게 영토를 넓혔다. 람세스 2세는 스스로 이집트 역사상 제일의 파라오라고 자랑했다. 그는 영토 확장 개척에 최선을 다했다. 지배한 영토에 대형 건축물들을 짓고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고대 이집트 최고의 신전인 카르나크 신전을 대대적으로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나일강 변을 따라 이집트와 누비아, 리비아 근방에 수많은 신전과 사원들을 개축하고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람세스 2세는 그가 세운 가장 대표적인 건설 프로젝트는 신도시이자 수도였다. 피람세스와 이집트의 랜드마크인 아부심벨 대신 전, 자신의 무덤인 신전 라메세움 이다. 신전뿐만 아니라 관공서 등 도시 구획을 정비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여 당시 이집트의 생활 수준을 높였다. 특히 람세스는 자신의 얼굴을 새긴 조각상을 이집트 전역에 세웠는데, 때로는 이전 파라오의 조각상인 아케나톤과 투탕카멘의 파라오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기도 하였다.
어차피 존재하지도 않는 전대 파라오들의 이름을 긁어내고 제 이름을 넣었다. 후대의 파라오가 자신의 이름을 파낼까 염려하여 석공들에게 일러 자신의 이름을 깊이 새기도록 명령하였다. 이집트 곳곳에 퍼져 있는 람세스 거상의 경우 약 15cm 깊이로 파내어 이름을 새겼다.
파라오 람세스 2세는 아부심벨 신전에다가 자신이 카데시 전투에서 신으로 변신해 혼자서 히타이트 군대를 쳐부수고 승리하여 히타이트와 동맹을 맺고 이집트가 중동의 동쪽으로 세력을 뻗은 전공을 과장하여 새겨두었다.
2.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대왕
광개토대왕비
AD 5세기 대고구려의 위대한 정복왕 광개토대왕은 북위와 연나라를 지배한 정복왕의 위력과 치적을 장수왕이 비석으로 세웠다. 커다란 각력응회암(角礫凝灰岩)으로 직4각형의 기둥 모양으로 된 4면 비석으로, 남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세워져 있다. 높이는 6.39m로 윗면과 아랫면은 약간 넓고 중간 부분이 약간 좁다. 아랫부분의 너비는 제1면이 1.48m, 제2면이 1.35m, 제3면이 2m, 제4면이 1.46m이다. 화강암의 받침대로 길이 3.35m, 너비 2.7m의 불규칙한 직4각형으로 만들었다.
새겨넣은 문자의 크기와 간격을 고르게 하려고 비면에 가로·세로의 선을 긋고 문자를 새겼다. 문자는 비의 4면에 모두 새겨져 총 44행 1,755자인데 이중 마멸되어 전혀 판독할 수 없는 것이 약 140여 자에 이른다.
제1면은 11행 449자, 제2면은 10행 410자, 제3면은 14행 574자, 제4면은 9행 369자이다. 각 문자는 당시에 통용되던 예서체에 가까운 서체를 사용하여 장중하고 위엄 있게 새겼다. 그리고 문자의 크기는 균등하지 않으나 대략 가로·세로가 14~15cm 안팎이며, 이체자(異體字)와 간체자(簡體字)로 쓰여 있다.
광개토대왕(374년~423년)은 누구인가?
고구려의 제19대 왕으로 이름은 담덕. 제18대 고국양왕의 아들로 386년 조부 소수림왕이 추천하여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391년 즉위하여, 대외적인 정복사업을 정력적으로 수행하여 대대적인 영토와 세력권을 확장하였다. 한나라 북위와 후연(흉노), 남연을 장악하였고 거란, 비려, 숙신 동부여를 장악하여 150만 평방 km, 중국의 1/3과 몽고를 지배하여 재위 기간에 64 개성과 1,400 촌락을 정복했으며, 고구려의 영역을 크게 팽창시켜 서로는 요하, 북으로는 개원(開原)에서 영안(寧安), 동으로는 혼춘(琿春), 남으로는 임진강 유역에 이르게 하였다.
영락이라는 연호를 써서 중국(북위)과 대등한 입장을 보였다. 391년 즉위 초부터 백제와 예성강을 경계로 대치하다가 396년에 직접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여 아신왕의 항복을 받아냈다.
광개토대왕의 장남은 20대 장수왕으로 등위 했고 차남은 고구려 기병대를 이끌고 알타이산맥을 넘어 훈제국을 탄생시켜 로마를 제압한 아틸라왕이 되었다고 한단고기는 전한다. 아무튼, 광개토대왕은 중국의 북위와 대등한 동양의 패권을 장악하였던 나라이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
이메일 :danm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