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 장군이 옥포해전 전날인 1592년 음력 5월 6일 함대를 정박시켜 하룻밤 자고 간 거제도 송미포(松未浦)가 어디인지에 대해 지금까지 여러 설이 있었으나, 아직도 정확하게 어디인지 비정(比定)을 못하고 있다. 송미포는 임진장초에 나오는 지명이다.
송미포가 어디인지에 대해 그동안 크게 세 가지 정도의 주장이 있었다. 거제시 남부면 다대리, 동부면 율포리, 장목면 송진포리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중에서 옥포해전 경로에 대해 소위 말하는 북로설을 따른 송진포로의 비정은 일단 배제된 상황이다.
고려 시대에 다대포진이 있었던 거제시 남부면 다대리가 송미포라는 설은 해군사관학교의 고 조성도 교수가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동부면 율포리라는 주장은 최근 거제역사문화연구소를 비롯한 지역의 향토사학자들이 새롭게 추정하는 내용이다.
북로설이 아니고 남로설을 뒷받침해 주는 사료는 주엽이 쓴 정운 장군의 일대기인 '증병조참판정공전'과 안방준의 '은봉전서'에 나오는 이순신 함대의 이동 경로다. 두 사료 모두에는 옥포로 가는 이동 경로 중에 조라포와 지세포(지시포) 등 거제도 남동쪽의 지명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사료들에도 송미포라는 지명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최근에 임진왜란 이후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운룡(李雲龍, 1562~1610)의 '거영일기(居營日記)'에서 송미포로 추정되는 송밀포(松密浦)라는 지명을 발견했다. 거영일기는 임진왜란 종전 후 현재의 통영시에 설치된 삼도수군통제영에서 통제사 이운룡이 쓴 일기다.

이운룡은 1605년 8월부터 1607년 6월까지 통제사를 지냈으며, 거영일기는 1605년 7월 30일부터 1606년 9월 1일까지의 일기다. 그중에 1606년 4월 5일과 4월 6일 일기에 이운룡이 통제영 소속 장수들과 함께 거제도로 진출하여 훈련과 점검을 하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자료출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1606년 4월 5일 일기 (거영일기 38쪽)
是日早發船 閑山前洋 營下諸將與東西道邊將徵聚 水操試閱. 仍率諸船 申時 到松密浦 加德天城安骨浦等船戰具親點 發還本處 因日暮 同處經夜
이날 일찍 배를 출발하여 한산 앞바다에서 통영 소속 여러 장수와 동서 도의 변장을 모아 수조를 시열하였다. 여러 배를 거느리고 신시(오후 3~5시)에 송밀포에 이르러 가덕·천성·안골포 등의 배와 전투 기구를 직접 점검하고, 출발하여 본처(통영-두룡포)로 돌아오니 날이 저물어 같은 곳에서 밤을 지냈다.
1606년 4월 6일 일기 (거영일기 38쪽)
是日早到古多大浦 助羅玉浦知世浦等 戰船軍兵點閱後
이날 일찍 고다대포에 이르러 조라포, 옥포, 지세포 등의 전선과 군병을 점검한 뒤 (후략)
훈련 첫째 날 통제사 이운룡은 통영에서 전선을 출발시켜 한산도를 지나 송밀포까지 갔다가 저녁나절에 통영으로 돌아왔다. 둘째 날에는 일찍 고다대포로 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운룡이 이틀 동안 훈련과 점검을 하면서 통영에서 출발하여 한산도를 거쳐 순차적으로 송밀포를 지나 고다대포로 진출했다는 것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송밀포가 한산도와 고다대포 사이에 있다는 것도 쉽게 추정이 가능하다.

1596년 8월 11일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송미포가 거제시 남부면 망산과 거제면 법동리 아자포 사이에 있었음을 추론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11일 (병오) 맑았다. (중략) 오후 8시경 거제에서 보낸 급보에 왜적의 배 1척이 등산으로부터 송미포로 들어갔다고 했다. 밤 10시경에 다시 아자포로 옮겨서 정박하였다고 보고했다. 배를 정비하여 내보내려고 할 때 다시 견내량을 넘어갔다고 보고하기에 복병장을 잡아 왔다.
(출처: 윤헌식, 역사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순신 장군의 옥포파왜병장에 나오는 송미포가 이운룡의 거영일기에 나오는 송밀포와 동일한 지명임을 알 수 있는 사료는 손기양(孫起陽, 1559~1617)의 '오한집'에 수록된 이운룡의 묘지명(墓誌銘)이다. 해당 묘지명에는 옥포해전 전날 이순신 함대가 자고 간 곳을 송밀포라고 했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翌日均果與湖師偕到松密浦 盖其走路遇援師而還也.
다음날 원균이 과연 전라도 수군과 함께 송밀포에 이르렀는데, 모두 그 도망가는 길에 구원하러 온 군사를 만나 돌아온 것이다.
厥明兩師到玉浦洋 遇賊奮擊 賊不能支 舍舟而陸 燒碎四五十艘 盡收其器仗.
날이 밝자 두 수군이 옥포 바다에 이르러 적을 만나 공격하였는데, 적이 버티지 못하고 배를 버리고 육지에 오르므로 40~50척을 불태워 부수고 그 무기와 물건을 모두 거두었다.
(자료출처: 한국고전종합DB)
거영일기의 송밀포는 이순신 장계에 나오는 송미포와 한자도 비슷하고 발음도 비슷하다. 거제시 동부면 율포리에는 소나무가 많이 자라는 곳이라 하여 속칭 '솔곶이'라는 지명이 있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는 솔곶이를 한자인 밀(密)로 훈차표기하여 송밀포(松密浦)라고 표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거제역사문화연구소와 통영문화원의 향토사학자들이, 이순신 장군의 옥포파왜병장에 나오는 송미포가 거제시 동부면 율포리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는 데에 힘을 실어주는 사료가 이운룡의 거영일기와 손기양의 오한집이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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