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기 걸린 물고기”가 던진 질문
- 소문과 혐오의 시대를 비추는 거울
‘감기 걸린 물고기’는 단지 물속의 이야기로 머물지 않는다. 작가 박정섭은 알록달록한 물고기 떼를 통해, 인간 사회에 내재한 불안과 배제의 심리를 꿰뚫어 본다.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이지만, 그 주제의식은 성인 사회에 더 큰 울림을 남긴다.
배고픈 아귀가 소문을 퍼뜨리는 장면은, 오늘날 SNS에서 떠도는 ‘가짜 뉴스’의 메커니즘을 연상시킨다.
확인되지 않은 말 한마디가 한 무리를 분열시키고, 결국 약한 존재를 희생시킨다.
‘감기 걸린 물고기’는 동화적 서사 속에 숨겨진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 책은 묻는다. “너희들, 감기 걸린 물고기 본 적 있어?” 그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너는 얼마나 쉽게 믿고 내쫓는가?’라는 성찰로 이어진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배고픈 포식자 ‘아귀’가 있다.
아귀는 직접 공격하지 않는다. 대신 ‘소문’을 무기로 삼는다.
“빨간 물고기가 감기에 걸렸대.”
그 말 한마디가 물고기 무리의 균열을 만든다.
무리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명분 아래, ‘다른 색’의 물고기가 하나씩 쫓겨난다.
이 과정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소문은 늘 ‘가장 눈에 띄는’, ‘다른’ 존재를 향한다.
조심스레 시작된 말은 어느새 ‘확실한 사실’로 둔갑하고, 불안에 젖은 다수는 합리화를 통해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한다.
작가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지만, 어른 독자는 이 장면에서 익숙한 현실을 목격한다.
SNS, 커뮤니티, 직장, 학교—소문은 언제나 약한 고리를 찾는다.
박정섭의 서사는 단순하지만, 사회심리학적 통찰을 품고 있다.
‘감기’라는 비논리적인 이유는 바로 집단이 불안을 합리화하는 방식이다.
이유가 사실이 아니어도,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내보내야 한다.
이것이 혐오와 배제의 심리다.
그림책 속 물고기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다.
‘누가 봤다더라’, ‘누구에게 들었다더라’는 말로 서로를 재단하고, 결국 자신들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아귀는 침묵한 채 입을 벌리고 기다린다.
이처럼 ‘소문’은 누군가의 두려움 위에서 성장하고, 끝내 누군가의 비극으로 완성된다.
작가는 이를 통렬한 블랙코미디로 제시하며, ‘집단의 무지’가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하는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 작품의 강점은 메시지만이 아니다.
짙은 남색의 바다, 원색의 물고기, 그리고 과감한 면 처리와 대사 중심의 구성은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하다.
글이 아닌 ‘대화’로만 전개되는 서사는 긴장감을 높이고, 독자는 마치 현장 속 증인처럼 참여하게 된다.
이런 연출은 그림책의 형식을 빌려 성인을 겨냥한 풍자극을 완성한다.
작가는 물고기 떼가 잘려나가는 장면을 통해 ‘공동체의 붕괴’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빨강, 노랑, 파랑의 색이 사라질수록, 바다는 점점 어두워지고 고요해진다.
결국 남은 건 몇 마리의 검은 물고기뿐.
그때서야 비로소 누군가가 묻는다.
“너희들 감기 걸린 물고기 본 적 있어?”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양심을 향한 일침이다.
《감기 걸린 물고기》는 아이들을 위한 교훈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어른 사회를 향한 풍자이자 경고다.
소문은 늘 누군가의 입에서 시작되지만, 그 소문을 키우는 것은 침묵한 다수다.
작가는 ‘소문을 낸 자’보다 ‘생각하지 않은 자’의 책임을 묻는다.
이 그림책은 결국 질문 하나로 끝난다.
“누가 그 말을 시작했을까?”
이 한 문장은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되풀이되는 혐오의 기원을 되묻는다.
‘감기 걸린 물고기’는 짧지만, 성인 독자에게 깊은 반성의 거울을 들이민다.
우리가 믿은 이야기, 우리가 내쫓은 누군가, 그리고 우리가 외면한 진실—그 모든 것이 다시 우리를 향해 돌아온다.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은 쌉쌀한 여운을 남긴다.
어쩌면 그 질문의 답은 이미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