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스며드는 제주, ‘성산메모리’가 전하는 조용한 위로

기억 속 풍경, 보이는 것보다 느껴지는 제주

'마음속에 남아 있는 풍경’ 하나

자연과 작가의 대화, 그리고 남겨진 여백

 

 

 

제주의 성산 일출봉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기억 속에 남는 풍경이다. 그러나 작가가 그려낸 〈성산메모리〉는 현실의 풍경이라기보다, 마음속 어딘가에 남은 기억의 잔상에 더 가깝다. 화면 속 하늘은 단순한 푸른 배경이 아니라, 바람이 지나고 빛이 머문 흔적처럼 흐린 감정의 층위를 드러낸다. 산과 대지는 경계를 갖추지 않고 스며들며, 관람자는 ‘보는 행위’보다 ‘머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감정의 시간과 존재의 흔적을 쌓아올린 결과물이다.

 

〈성산메모리〉의 가장 큰 특징은 색의 중첩이다. 하늘의 푸름, 산의 질감, 대지의 황색이 뚜렷한 구분 없이 맞닿아 있으며, 이는 작가가 시간과 감정을 겹겹이 덮고 긁어내는 과정에서 완성된 결과다. 맑고 투명한 하늘빛보다는 습기와 바람의 흔적이 남아 있고, 대지는 황금빛의 생명력을 품고 있다. 이 색채의 언어는 단순히 시각적인 표현을 넘어, ‘시간이 지나며 쌓인 삶의 기억’을 암시한다. 작가는 자연을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서 느꼈던 공기, 온도, 감정의 흔적을 색으로 번역한다.

 

이 작품에는 어떤 강요나 설명도 없다. 대신 관람자가 스스로의 기억을 투영할 여백이 넉넉히 남아 있다. 이 여백은 작가의 절제된 태도이자, 자연에 대한 경의로 읽힌다. 화면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긁히고 눌린 물감의 흔적이 보인다. 그 질감은 작가가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호흡한 시간의 리듬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풍경’이 아니라 ‘기억’을 남기려는 이 접근은, 자연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함께 머무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성산메모리〉는 특별한 메시지를 외치지 않는다. 대신 조용한 위로의 온도를 지닌다. 시간에 따라, 시선에 따라 다른 감정을 불러오는 풍경은 일상 속에서 천천히 스며든다. 작가의 손끝에서 완성된 한 점의 풍경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기억의 조각’으로 다가온다.

 

하루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작품 앞에 머물면,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던 감정이 잔잔히 풀린다. 그래서 ‘성산메모리’는 단지 제주의 한 장면이 아니라, 누구나 가진 내면의 풍경을 일깨우는 예술적 경험이 된다.

 

 

 

작성 2026.01.15 16:02 수정 2026.01.1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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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