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장면을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에 머물렀던 시간의 감각을 남기는 그림이 있습니다. 로빈의 회화가 그렇습니다. 그의 작업은 특정한 장소나 사건을 분명히 지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이미 지나온 시간 속에서 어렴풋이 남아 있는 빛의 결, 색의 온도, 표면에 남은 흔적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그림 앞에 서면 ‘무엇을 그렸는지’를 묻기보다 ‘언제였는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로빈은 일상의 풍경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기억 속에서 여러 번 덮이고 닳은 장면들을 조용히 겹쳐 올리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붓질은 분명하지만 과장되지 않고, 색은 절제되어 있으나 단조롭지 않습니다.
이 미묘한 균형 덕분에 작품은 강하게 말을 걸기보다 공간 안에서 천천히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이 회화들이 놓이는 자리를 상상해보면, 갤러리의 흰 벽뿐 아니라 집 안의 빛이 오래 머무는 벽, 혹은 하루의 끝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닿는 공간이 떠오릅니다. 작품은 공간의 중심이 되기보다, 그 공간의 리듬을 낮추는 역할을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은 배경이 되고, 어느 순간 다시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로빈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 완성된 이미지’라기보다 시간 속에서 계속 달라지는 감각입니다. 아침의 빛, 계절의 변화, 그리고 바라보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같은 그림이 전혀 다른 표정으로 남습니다.
이 점에서 그의 회화는 소유의 대상이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로빈갤러리는 이러한 작업의 성격에 맞춰 작품을 빠르게 소비하기보다, 천천히 이해하고 연결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작품의 가격과 소장 조건 역시 일률적으로 정해진 정보가 아니라, 작업의 맥락과 상황을 함께 나누는 상담을 통해 안내됩니다.
로빈 갤러리 코너는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림이 만들어지는 시간과 그 그림이 머무를 자리를 함께 상상해보는 곳입니다. 앞으로 이 지면을 통해 로빈의 작품과 그 변화의 과정을 차분히 소개해 나갈 예정입니다. 작품 소장을 원하시면 네이버 밴드 <산청로빈갤러리>를 방문해 보는것도 좋은 방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