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조선 수군은 남해안 일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일본군 함대를 쳐부수어 조선이 제해권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592년 조선 수군은 4차례에 걸쳐 출전하였는데, 제2차 출전 시기에는 사천해전, 당포해전, 당항포해전, 율포해전 4번의 전투를 치렀다. 이들 전투 가운데 당포해전이 벌어진 곳이 바로 지금의 통영시 산양읍 당포리이다.
통영시 당포리는 얼마 전까지 삼덕리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이 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려 삼덕리 지명을 당포리로 바꾸었다는 소식을 며칠전에 듣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2025년 10월 17일 법정동 삼덕리가 폐지되고, 당포리가 신설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포리 마을 주민들이 보여준 역사 인식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필자는 이번 글에서 당포리에 있는 당포진 유적에 관한 설명과 함께 자료를 몇 가지 소개하려고 한다. 사실 당포진 유적에 대해서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현 국립해양유산연구소)가 발간한 『조선시대수군진조사3 - 경상우수영편』라는 연구서가 가장 손꼽을 만한 훌륭한 자료이다. 공공 연구 기관에서 많은 시간과 인원을 투입하여 발간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수군진 연구 자료이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니 관심이 있으신 분은 이를 읽어 보시기를 권장한다.
필자는 『조선시대수군진조사3 - 경상우수영편』에 서술된 당포진 유적 관련 내용을 바탕으로 그 유적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참고하실만한 자료를 소개하고자 한다.
당포진은 조선시대에 경상우수영에 속했던 수군진으로서 만호가 지휘하던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 또는 장계에도 당포만호를 언급한 기록이 종종 등장한다. 현재 통영시 산양읍 당포리에는 당포진성 유적이 2개가 있다. 하나는 구 당포진성으로서 훼손이 심하여 흔적만 남아 있고, 다른 하나인 신 당포진성은 일부 성터가 지금까지 보전되어 있다.
이 2개의 당포진성 가운데 과연 어느 쪽이 임진왜란 시기 당포해전지였을까? 정확한 것은 알기 어렵지만, 『조선시대수군진조사3 - 경상우수영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조선시대수군진조사3 - 경상우수영편』(297쪽)
첫 번째로, 구 당포진성은 당포만호진 이전에 설진된 번계 천호진(태종~세종 시기)의 흔적일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로 중종 때 당포는 성안에 물이 없으므로 진을 옮기자는 기록이 있다. 다만 진을 옮기자는 기록이 실제로 실행되었는지 여부는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때 진성을 새로 쌓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때 진을 옮겼다면 옮기기 전의 진성이 구 당포진성일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로, 성종 때 당포진성을 쌓은 후 연산군 때 당포진에 성만 쌓고 관사가 없어 관사를 옮겨 설치하게 하는데, 이때의 관사와 관련된 흔적일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고 판단된다.
위에서 설명된 가능성 가운데 어느 하나가 맞는다면, 그 시기로 보아 임진왜란 시기 당포해전지는 신 당포진성이 될 것이다. 아래는 당포리 일대를 보여주는 현대 지도에 구 당포진성과 신 당포진성의 위치를 표시한 것이다. 그 표시 위치는 『조선시대수군진조사3 - 경상우수영편』의 설명을 참조한 것이다.

신 당포진성은 성벽의 흔적이 상당 부분 남아 있고, 일부 구간은 복원도 되어 있다. 신 당포진성 유적은 여러 기관에서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하여 다수의 보고서가 발간되어 있다. 아래는 『조선시대수군진조사3 – 경상우수영편』에 수록된 신 당포진성 유적현황이다.

위 지도는 신 당포진성의 성문과 치를 표시하여 당포진의 본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 당포진성 서쪽에 '선소'로 표시된 부분은 당포진에 딸려 있던 선소의 위치를 추정한 것이다. 지금은 이 일대가 매립되어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이 지역 주민 제보에 따라 그 위치를 확인한 것이라고 한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제공하는 항공사진 중에도 신 당포진성의 모습이 담긴 1950년대 사진이 있어서, 이를 통해 그 선소의 모습과 함께 신 당포진성의 대략적인 성벽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그 해당 항공사진이다.

위 항공사진과 앞의 '신 당포진성 유적현황' 지도를 비교해보면, 당포진과 그에 딸린 선소의 모습을 더욱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초기 임진왜란 연구자 가운데 한 분인 최석남 씨가 1965년에 출간한 『한국수군활동사』에는 신 당포전성에 딸려 있던 선소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있어서 눈길을 끈다. 아래는 그 책에 수록된 해당 사진을 스캔하여 옮긴 것이다.

처음에 위 사진을 보았을 때 꽤 놀라워서, 정말 신 당포진성 선소를 찍은 것이 맞는지 의심까지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 지도에서 제공하는 로드뷰를 이용하여 현재 당포리의 경관과 위 사진 윗부분의 경관을 비교하여 같은 곳임을 확인하였다. 위 사진에 나타난 선소의 모습은 확실히 현전하는 선소 유적들과 유사점이 보인다. 물론 이에 관해서는 관련 분야 전문 학자들의 확인을 거쳐야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당포리의 구 당포진성은 훼손이 심각하여 성벽 대부분이 붕괴 또는 유실되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조선시대수군진조사3 - 경상우수영편』은 구 당포진성 추정지를 간략히 표시한 지도만 소개하였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학계에 공개한 도면자료집인 『광복이전조사유적유물미공개도면1 - 경상남도』에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 3월경 일본인들이 구 당포진성 유적을 조사하여 그 성벽의 흔적을 그린 도면이 포함되어 있다. 아래는 그 해당 자료이다.

위 도면의 본 제목은 '고당포 국유림 경계도(古唐浦 國有林 境界圖)'이며, 조사자는 일본인 海老原侃과 橋本節藏이고, 1916년 3월 25일이 조사일로 되어 있다. 비록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지만, 구 당포진성의 성벽 형태를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아무쪼록 위 자료들이 통영시 산양읍 당포리의 당포진 유적에 대한 유익한 참고 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조선시대수군진조사3 - 경상우수영편』, 2016,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현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최석남, 『한국수군활동사』, 1965, 명양사
『광복이전조사유적유물미공개도면1 - 경상남도』, 1998, 국립중앙박물관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