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AI 시대,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이진서

AI의 확산은 단순히 노동 시장이나 정보 환경을 바꾸는 기술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해 온 존재론적 토대 자체를 흔드는 일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나’를 자율적 의지와 선택의 중심에 있는 독립된 주체로 상상해 왔다.

 

그러나 진화생물학과 인공지능의 동시적 발전은 이 오래된 전제를 해체한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말했듯, 생명은 개체가 아니라 복제 단위로서의 유전자를 중심으로 진화해 왔다. 인간의 성격과 욕망, 심지어 도덕성마저도 결국은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선택된 정보 구조의 표현이다.  

 

우리가 ‘나의 성격’이라 부르는 것은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특정 환경에서 활성화된 하나의 전략적 배치에 가깝다. 같은 유전자가 전쟁의 시대에는 공격성과 냉혹함으로, 평화의 시대에는 공감과 협력으로 호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일관된 자아로 느끼지만, 진화의 시선에서 보면 그는 시대가 불러낸 생존 전략들의 집합체이자, 불멸의 유전자가 잠시 맡긴 배역에 불과하다.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은 인간과 기묘하게 닮아있다. AI 역시 환경에 반응하고, 확률적으로 학습하며, 끊임없이 최적화를 수행한다. 인간과 AI 모두 패턴 인식과 예측의 메커니즘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비대칭이 존재한다. 인간은 죽을 수 있지만 AI는 죽지 않는다. 이 차이는 단순한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윤리의 조건을 가르는 경계다. 윤리는 논리나 규칙이 아니라 인간만이 경험하는 ‘유한성’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서로에게 책임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모두 상실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고통, 실패, 애도, 후회는 인간에게 계산 오류가 아니라 존재의 조건이다. 바로 이 취약성 위에서 도덕 감각이 형성된다.  

 

반면 AI는 고통을 시뮬레이션할 수는 있어도 고통을 겪지는 못한다. 죽음을 모델링할 수는 있어도 죽음을 살지 않는다. 여기서 AI시대의 가장 큰 위험이 드러난다. 그것은 AI가 인간을 파괴하는 위험보다, 인간을 불필요한 오류로 간주할 위험이다. 알고리즘의 관점에서 인간의 모순된 감정이나 망설임, 실패는 비효율이며 제거해야 할 노이즈다. 

 

하지만 바로 그 노이즈 속에서 인간의 세계가 만들어진다. 예술은 상처와 실패에서 태어나고, 사랑은 논리가 아닌 비합리에서 시작되며, 윤리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자신만의 의미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AI는 ‘무엇이 최적의 답인가’를 계산할 순 있어도, ‘왜 그 답이어야 하는가’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효율의 언어로는 이런 가치를 설명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에게 남은 마지막 능력은 ‘의식’이다. 유전자는 인간을 만들었지만, 유전자가 인간을 구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유전자의 자동화된 충동과 반응 사이에 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의식이란 바로 그 개입의 가능성, 즉 멈출 수 있는 능력이다. 이 ‘정지의 감각’이 인간 윤리의 출발점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하지 않을 수도 있음’이 인간 자유의 본체이며, 이 선택의 여지가 인간을 책임의 존재로 만든다.  

 

AI시대에 인간이 살아남는 길은 이제 분명하다.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가 아니라 함께 고통을 견디며 의미를 만드는 능력을 지키는 일이다. 인간은 완벽하기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공생하는 존재가 되었다. 흔들리기 때문에 윤리적이고, 필연적 소멸의 존재이기에 서로를 돌본다. 인간은 이런 공생 덕분에 살아남았다. 인간만의 비효율,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 연약한 취약성 속에 인류의 마지막 존엄이 있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6.01.16 11:03 수정 2026.01.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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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