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가 새해부터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미등록 외국인 아동에게 보육료를 지원하기로 했다. <본지 1월 17일 자 기사 참조>
이른바 ‘투명인간’으로 불리며 우리 곁에 존재하면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림자 아이들’의 손을 마침내 지방정부가 맞잡은 것이다.
이번 결정은 체류 자격을 떠나 이 땅에서 자라는 모든 생명은 평등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실천한 중대한 이정표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이 수도권을 넘어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부인 부산·울산·경남(이하 부울경) 지역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본다.
부울경은 명실상부한 외국인 근로자의 핵심 거점이다. 하지만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이들의 삶 이면에는, 부모의 체류 자격 문제로 인해 출생 등록조차 되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방치된 아이들이 적지 않다.
행정안전부의 외국인 주민 현황에 따르면, 경남은 전국에서 경기도와 서울에 이어 세 번째로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부산과 울산 역시 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외국인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들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국내 거주 미등록 아동이 전국적으로 2만~3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며, 이 중 상당수가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부울경 지대에 거주하고 있다.
그동안 이 아이들은 내국인이나 등록 외국인 아동이 누리는 보육 지원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왔다. 죄가 있다면 이 땅에서 태어났거나 부모를 따라 이곳에 왔다는 것 뿐인데, 세상의 문턱은 유독 높고 차가웠다. 어린이집 원비 전액을 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많은 가정은 교육을 포기하거나 아이들을 위험한 방임 환경으로 내몰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부울경 지자체들은 그간 ‘인구 소멸 위기’를 외치며 수많은 출산 장려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아이들을 외면하면서 인구 유입을 논하는 것은 모순이다. 미등록 아동 역시 장차 우리 사회를 구성할 소중한 인적 자원이다. 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지와 통합을 위한 미래 투자다.
이미 변화의 싹은 트고 있다. 경남 김해와 거제 등 일부 기초지자체와 시민단체들이 미등록 아동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기초단체의 열악한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번 경기도의 결단처럼 부울경 광역 단위의 정책적 결단과 예산 뒷받침이 필수적인 이유다.
경기도가 화성, 안성, 이천에서 시작해 전역으로 지원을 확대하듯, 부울경도 지역 특성에 맞는 보육료 지원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월 10만 원의 보육료 지원은 금액 자체보다 큰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이들에게 “너희도 우리 사회의 소중한 일원이다”라고 건네는 따뜻한 안부 인사이며,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울타리가 되어주겠다는 약속이다.
아이들은 국적을 선택해 태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아이들이 자라날 환경을 선택해 줄 수 있다. ‘있지만 없는 아이’가 아니라 ‘함께 꿈꾸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부울경이 더 넓은 품을 내어주어야 한다.
지방소멸의 파고가 거세지는 지금, 국적의 벽을 넘어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결단이야말로 부울경이 보여줄 품격 있는 해법이다. 경기도발 훈풍이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부울경의 봄바람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