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4월부터 재능기부로 시작한 도서관 영어 원서 독서회가 어느새 해를 넘었습니다. 그동안 정이 쌓여서 그런지 회원, 한 명 한 명 볼 때마다 사랑스럽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평일 오전 모임이라 대부분 책을 좋아하는 주부들인데, 그중 남자 직장인이 딱 한 분 계십니다. 독서회 첫 시간 서로 평등하게 영어 이름을 부르기로 하니, 찰리(Charlie)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참여 동기를 물으니 돈만 내고 공부하지 않는 아들의 영어 교육비가 아까워서 본인이 공부를 시작했다며 퇴직 후 영어권 나라에서 살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쁜 직장인이 얼마나 꾸준히 나올까 반신반의했는데, 지금까지 성실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독서회에 살아남은 회원들은 문학과 예술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공통점이 있습니다. 평생 엔지니어로 살아오며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찰리에겐 회원들이 상식으로 아는 문화 정보에도 놀라움을 표했습니다. 그를 보고 있으면 논어에 나오는 ‘사무사(思無邪)’가 생각났습니다. 공자는 시경에 수록된 시에 대해 ‘사무사’라고 평했는데, ‘생각에 사특함이 없고 순수하다’는 뜻입니다. 찰리는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혼자서 못 따라갔다 싶을 때도 꼭 다시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미국 출장을 갔을 때는 일과가 끝나고 저녁 시간 호텔에서 보이스 톡으로 독서회를 참여할 정도로 열의를 보였습니다. 그를 보고 있으면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듯했습니다. ‘페르시아어 수업’이라는 영화의 원작인 ‘언어의 발견’ 영어 버전을 읽었는데, 영화를 봤을 때 처음엔 지루했지만 큰 감동을 받았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고,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 단편을 점심 시간에 읽고서는 가슴이 먹먹했다 했습니다. 그리고 회원들이 나누는 담소 하나 놓치지 않고 귀를 기울이곤 어디 카페 브런치가 맛있더라 어느 한정식이 괜찮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오는 주말에 아내를 데리고 가서 함께 먹었습니다. 아내와 비슷한 여성들을 관찰하며 아내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익혀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연말에는 손톤 와일더의 희곡, ‘우리 읍내’의 연극 공연 정보를 공유했더니 아내와 함께 보러 갔습니다. 정예서 선생님의 책, ‘나를 세우는 네 가지 기둥’ 텀블벅에 참여하여 책을 읽고는 그동안 가치관이라는 기둥을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아쉬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찰리의 변화는 중장년의 남자들이 세상에서 제일 바뀌기 어려운 종족이라는 편견을 깨기에 충분했습니다.
논어의 학이편에서 증자는 매일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남을 위하며 일할 때 정성을 다했는가? 친구와의 사귐에 있어 신의를 저버린 일은 없었는가? 배운 것을 올바로 익혔는가?
세상엔 배울 게 정말 많습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지식이 늘어난다고, 기술이 좋아진다고 배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앎이 삶으로 들어와 작은 변화가 일어날 때 올바른 배움이 시작되는 거지요. 찰리를 보면서 자만심과 선입견을 내려놓고 배움을 삶에 적용하는 데는 나이와 성별이 걸림돌이 되지 않음을 경험했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배우든 사무사(思無邪)의 마음이자 어린아이의 탐구심으로 임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내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진정으로 매력 넘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도요.
K People Focus 차경숙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함께성장인문학 연구원 수석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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