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답답해 미치겠다면?" 인생 평수 넓히는 법, '예슈아'(구원)

번아웃의 본질은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공간'이 좁은 것이다

심리적 평수 넓히기... 불안이라는 감옥을 부수는 '공간적' 구원

죽음 이후가 아닌 오늘을 위한 구원, 내 삶의 지평을 확장하는 기술

AI 이미지 (제공: 미디어 울림)

 

인생이라는 '만원 지하철'에서 내리는 법

 

출근길 꽉 막힌 만원 지하철, 사방에서 조여오는 타인의 시선, 그리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미래. 현대인의 삶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바로 '답답함'이다. 우리는 늘 무언가에 갇혀 있다. 카드 할부금에 갇히고, 타인의 평가에 갇히며,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이라는 좁은 틀 속에 자신을 구겨 넣는다. 그래서일까. 많은 이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친다.

 

그런데 우리는 대개 구원을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나 '누군가 나타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구원은 로또 당첨처럼 외부에서 오는 횡재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당신을 옥죄고 있는 그 '좁은 공간'에서 탈출하여 숨 쉴 수 있는 '넓은 공간'으로 나아가는 상태를 말한다. 히브리인들이 3,000년 전 발견한 '예슈아(יְשׁוּעָה, Yeshuah)'의 지혜는, 인생의 답답함을 해결하는 열쇠가 더 빠른 속도가 아니라 더 넓은 '평수'에 있음을 가르쳐 준다.

 

 

'좁음'과 '넓음'의 이중주

 

히브리어로 구원을 뜻하는 '예슈아'의 어근은 '야샤(יָשַׁע, Yasha)'다. 이 단어의 원형적 의미는 '넓다', '광활하다', '자유롭게 하다'이다. 반대로 히브리어에서 고난이나 환난을 뜻하는 단어는 '짜라(צָרָה, Tsarah)'인데, 그 어근은 '좁다', '압착하다', '조이다'라는 뜻의 '짜르(צַר, Tsar)'다. 즉,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고통이란 '공간이 좁아져서 숨을 쉴 수 없는 상태'였고, 구원이란 '그 좁은 곳에서 터져 나와 광활한 평지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출애굽(Exodus) 사건은 이 '예슈아'의 전형이다. 노예라는 좁은 정체성에 갇혀 있던 민족이 광야라는 광활한 공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구원은 '기회의 확장'이며, 심리학적으로는 '인지적 유연성의 확보'다. 구원은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당신의 인생 평수를 넓히는 지극히 실전적인 생존 기술이다.

 

 

심리학적 폐쇄공포와 사회적 구원

 

심리학에서는 불안을 '시야의 협착'으로 정의한다. 공포에 질리면 인간의 뇌는 오직 위협 요소에만 집중하며,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주변의 넓은 맥락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짜라(좁음)' 상태다. 이때 필요한 구원은 "괜찮아질 거야"라는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시야를 넓혀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예슈아(넓음)'의 통찰이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현대 사회의 구원은 '사회적 이동성'과 연결된다. 계급의 사다리가 끊기고 경쟁이 심화되는 것은 사회 전체가 좁아지는 현상이다. 이때의 구원은 공동체가 서로를 압착하는 경쟁에서 벗어나, 서로의 '공간'을 인정해 주는 포용력에서 시작된다.

 

신학적, 특히 개혁교회적 관점에서 '예슈아'는 하나님의 구원사적 이름이기도 하다(예수의 히브리식 이름이 바로 '예슈아'다). 이는 신이 인간을 죄라는 좁은 자아에서 끄집어내어 '영원'이라는 광활한 지평으로 초대하는 사건이다. 구원은 죽어서 가는 티켓이 아니라, 오늘 내가 갇혀 있는 이기심의 감옥 문을 열고 타인과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는 실존적 결단이다.

 

 

왜 지금 우리에게 '공간적 구원'이 필요한가?

 

우리는 흔히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좁은 방 안에서 아무리 빨리 뛰어봐야 벽에 부딪힐 뿐이다. 당신이 지금 번아웃에 빠졌다면, 그것은 당신의 엔진이 고장 난 것이 아니라 당신이 달리고 있는 트랙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첫째, 구원은 '정의(Definition)'를 바꾸는 것이다. 내가 나를 '연봉 5천만 원짜리 직장인'으로만 정의하면, 그 액수가 깎이는 순간 내 세계는 무너진다. 하지만 나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창조적 존재'로 넓게 정의하면, 직장의 상실은 구원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둘째, 구원은 '거리 두기'다. 문제에 너무 바짝 붙어 있으면 그것이 세상의 전부처럼 보인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공간을 확보할 때(야샤), 비로소 문제는 작아 보이고 해결책은 커 보인다.

 

셋째, 구원은 '호흡(רוּהַ, 루아흐)'이다. 히브리어에서 호흡과 영혼은 같은 뿌리를 가진다. 공간이 넓어야 깊은 숨을 쉴 수 있다. 우리가 명상을 하고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물리적, 정신적 평수를 넓혀 영혼이 숨 쉴 틈을 주기 위함이다.

 

따라서 구원을 기다리지 마라. 당신을 가두고 있는 낡은 생각, 유독한 관계, 경직된 일상에서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라. 그 틈새가 바로 구원의 시작점이다.

 

 

당신의 영혼은 지금 몇 평인가요?

 

인생은 어쩌면 끊임없이 자신의 평수를 넓혀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좁은 세계관에서 청년기의 열정으로, 중년의 책임감에서 노년의 지혜로 나아가는 모든 단계가 '예슈아'의 과정이다.

 

구원은 '자아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위대한 탈옥 사건'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신을 찾는 이유는 신이 우리보다 압도적으로 크고 넓기 때문이다. 그 광대함에 우리를 접속시킬 때, 우리를 짓누르던 현실의 압착(짜라)은 힘을 잃는다.

 

당신을 답답하게 하는 그 일들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그것들이 당신의 거대한 인생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작은지 상상해 보라. 당신의 인생 평수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을 수 있다. 당신은 갇혀 있도록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광활한 대지를 달리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다. 이제 그 좁은 문을 열고 나오라. 드넓은 광장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작성 2026.01.28 15:17 수정 2026.01.2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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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