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남성중창단 서클활동을 했습니다. 2학년 선배들이 교실에 들어와 악기 없이 화음을 맞춰 부르는 모습에 홀리듯 가입했습니다. 고3 되기 전까지 동기들끼리 뭉쳐 열심히 활동했었습니다.
40대 중반인 지금도 그때 활동했던 친구들은 소중합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툭 던지는 한마디 위로, 몇십 년 전 함께 했던 컴퓨터 게임을 다시 하면서 웃음 짓는 시간, 옛 추억을 소환하며 박장대소하던 순간들.
여러 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힘이 있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고, 잘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좋은 친구가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진정한 의미의 친구란 아무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함께 있으면 좋은데, 막상 우리의 대화는 주로 과거의 추억을 되짚거나, 유튜브나 뉴스에서 본 이야기를 한 번 더 언급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진 않은지. 혹은 각자의 대소사를 품앗이 하는 걸로 만족하고 있진 않은지 않는지 말입니다.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현재의 피로감을 잠시 잊어보려고 하는 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함이 있습니다. 나세네 대학원 지정도서였던 파커 J.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주제가 있는 모임’이라는 모델을 제시합니다. 이 모임에서는 교사도, 학생도 중심이 아닙니다. 중심에는 ‘주제(위대한 사물)’가 있습니다.이 모임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함께 진리를 탐구하는 '배움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자아와 배우는 사람의 자아가 '주제'라는 매개체를 통해 깊이 연결되는 영적이고 지적인 사건입니다.
문득 생각해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모임이 더 많아진다면 어떨까. 추억을 나누는 친구를 넘어, 함께 사유하고, 함께 질문하고, 함께 미래를 그려보는 친구들 말이죠.
함성연과 나세네에서는 이런 친구를 ‘문우(文友)’라고 부릅니다. 글로 맺어진 친구, 생각으로 연결된 벗입니다. 저는 이런 문우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풍광을 지금 이 자리로 당겨와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런 모임의 자리를 지키고 싶습니다.
이상 2026년 인문학 트렌드의 마지막 키워드로, ‘주제가 있는 모임’에 대해 말씀드려 봅니다. 올 한 해를 보내며, 관계 속에서 위로만이 아니라 함께 진리를 탐구하는 기쁨까지 경험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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