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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으로 오라,
그가 말했다.
- 기욤 아폴리네르, <벼랑 끝으로 오라> 부분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
세 살 때 산골 마을에서 읍내 변두리 빈집으로 이사를 왔다.
나는 큰 마루 밑에 들어가 밖을 내다보았다.
어른들이 이삿짐을 풀고 있었다.
심층 심리학자 융은 말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다.”
그 많은 경험 중에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는
유년의 기억 속에
나의 운명이 씨앗처럼 뿌려져 있었다.
나는 항상 안전한 곳에 숨어서 세상을 내다 보았다.
가끔 세상 속에 뛰어들어
상처투성이가 되곤 했지만,
이내 돌아와 웅크려 몸을 추슬렀다.
이제 노년이 되어가며
가끔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벼랑 끝으로 오라’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백 척 장대 꼭대기에서 한 걸음 내디뎌라’
벼랑 끝으로 기어간 어린 새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며 날개를 펴게 된다.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내디뎌
내가 날개를 펴는 날이 올까?
내 인생의 모든 기억을 재구성하게 되는 날이.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