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희의 맛있는 개똥철학] 팬덤

전명희

옛날에는 신을 따랐고 그다음엔 스승을 따랐으며 요즘 우리는 특정한 ‘사람’을 따른다. 그 현상이 ‘팬덤’이다. 팬덤은 사랑처럼 시작해 신념처럼 굳어진다. 

 

“그 사람이 좋아서”로 시작했다가 어느새 “그 사람을 지켜야 해서”가 된다. 응원은 기도가 되고 비판은 배신이 된다. 지나친 관심에 빠져들면 관심을 위한 관심이 되기 쉽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과 닮아간다. 그래서 팬덤은 양날의 검과 같다. 지나치면 자신이 베이고 적당하면 취미로써 좋은 여가생활이다. 

 

맹목, 진영, 집단적 분노, 그리고 “우리는 옳다”는 달콤한 착각은 고통의 뿌리가 된다. 내 감정을 리모콘에 맡기면 자신의 판단은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추앙하는 무리에게 배송완료 된다. 팬덤의 고통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가 욕먹으면 내가 상처받고 그가 실패하면 내가 무너진다. 타인의 인생에 끼어들어 위험지는 순간이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무리에 휩쓸리지 않는다. 팬덤은 외로움을 해결해 주는 대신 사유를 차단한다. 집단 안에서 분노의 방향이 같아지고 사랑의 향유가 같아지며 내가 없고 우리만 남는다. 가장 큰 폐해는 판단의 위탁이다.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묻지 않고 ‘우리 편이니까’로 결론을 대신한다. 

 

역사에서 가장 극심했던 팬덤은 국가 전체가 하나의 팬클럽이 되었던 히틀러다. 히틀러를 향한 집단적 열광은 정치가 아니라 팬덤에 가까웠다. 비판은 금지되었고, 의심은 반역이 되었으며, 박수는 의무가 되었다. 한 인간에 대한 숭배가 수백만의 죽음으로 번졌을 때, 가장 잔혹한 얼굴을 드러냈다.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의 마오쩌둥 숭배 역시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맹목의 문제였다. 젊은이들은 공산주의를 외쳤고, 책은 불태워졌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김일성은 지존이 되었고 그 자식들도 대를 이어 지존이 되었다. 그 결과 지구에서 가장 가난하고 자유가 없는 국가가 되었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진실을 덮고 거짓을 따르는 역사의 죄인이 된 것이다.

 

이 극단적인 팬덤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좋아함이 생각을 압도했을 때, 인간은 가장 비인간적인 선택을 할 때 팬텀은 사랑이 아니라 신앙이 된다. 물론 오늘의 팬덤은 총 대신 댓글을 들고 있고, 광장 대신 화면 속에 있다. 그러나 구조는 닮아있다. 팬덤의 폐해는 대개 조용히 시작해 역사에 큰 소음과 상처로 남는다.

 

좋아하되, 판단을 넘기지 말고 응원하되, 생각을 포기하지 말며 함께하되, 나를 잃지 말아야 한다. 팬덤에 중독되는 것보다 스스로를 잃지 않는 일이 조금 더 어렵고, 조금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다시 돌아와야 할 곳은 언제나 ‘나’라는 제 자리다.

 

내 감정의 리모콘을 남에게 맡기지 말자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

이메일 jmh1016@yahoo.com

 

작성 2026.01.30 11:11 수정 2026.01.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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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