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산 원도심 ‘로더 라 비 퍼퓸스튜디오’ |
충남 서산시 동문동 원도심. 한때 서산의 중심이었지만 신도시 개발 이후 발길이 뜸해졌던 이곳에, 다시 사람들의 감각을 깨우는 공간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과 함께 공방과 예술가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이 거리 한편에, 향기로 삶을 이야기하는 조향 공방 ‘로더 라 비 퍼퓸스튜디오’가 자리하고 있다.
이 공간을 운영하는 한보람 대표는 “서산에서는 이곳을 동문동보다는 ‘원도심’으로 더 많이 부른다”며 “지역을 알리고, 원도심을 살리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일대에는 공방 운영자와 미술협회 작가들이 상주하며, 서산 원도심을 문화의 거리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로더 라 비 퍼퓸스튜디오는 서산 원도심 도시재생 구역에 자리한 조향 공방이다. 한 대표는 “이곳은 예전에는 빈 점포가 많고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던 곳이었다”며 “지금은 젊은 층 유입을 위해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고, 공방과 문화 공간이 조금씩 늘고 있어요.”라며 설명했다.
▲ 사진 = 로더 라 비 퍼퓸 스튜디오 |
그녀는 원래 다른 지역에서 공방을 운영하다가, 원도심 재생 취지에 공감해 이곳으로 이전했다. “홍보를 크게 하지 않아도 검색을 통해 직접 찾아오는 분들이 계신다”며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알아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고 말했다. 현재 로더 라 비 퍼퓸스튜디오는 서산 원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향 공방 중 하나다.
공방 이름인 ‘로더 라 비’는 프랑스어로 ‘삶의 향기, 인생의 향기’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보람 대표는 “모든 삶에는 각자의 향기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은은하게 남는 향처럼, 사람의 삶도 저마다의 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서산에서 처음으로 조향 공방을 열었다는 점은 한 대표가 가장 큰 자부심으로 꼽는 부분이다. 그는 “공방을 유지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며 “1~2년 하다가 문을 닫는 경우도 많지만, 투잡을 병행하며 7~8년 가까이 운영을 이어오고 있죠”라고 말했다. 특히 단체 수업이 가능한 규모의 공방이라는 점은 지역 내에서도 드문 강점이다.
▲ 사진 = 로더 라 비 퍼퓸스튜디오 |
한보람 대표의 출발점은 향이 아닌 ‘간호’였다. 대학 졸업 후 간호사로 병원에서 근무하며 결혼과 이사를 거쳐 서산에서 생활하던 그녀는, 환자를 돌보는 일이 점점 버겁게 느껴지던 시기에 우연히 향을 만났다.
“고향 친구가 향 공방을 하고 있었는데, 놀러 갔다가 너무 힐링이 되는 거예요.” 그 경험을 계기로 병원 근무와 병행하며 자격증을 취득했고, 홈 공방에서 시작해 작은 공방으로 확장했다. 향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을 느끼며 여러 조향 협회 과정을 거쳐 공부를 이어갔고, 결국 병원 폐업을 계기로 공방 운영에 집중하게 됐다. “공부할 게 정말 많았지만, 힘들어도 즐거웠어요. 향을 다루는 일은 저에게 또 다른 방식의 치유였거든요.”
로더 라 비 퍼퓸스튜디오의 수업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선다. 향이 인간의 감정과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바탕으로 한 ‘향기 테라피’ 수업을 주제로 관내·인근 지역 출강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학교 진로 체험과 교육청 연계 프로그램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 사진 = 로더 라 비 퍼퓸 스튜디오 ©시사와이드경제신문 |
공방에서는 나만의 커스텀 향수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 취미반, 그리고 공방 창업과 조향사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전문 자격증 과정도 운영 중이다. 한 대표는 “완성된 향수보다 중요한 건, 향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의 경험과 만족감”이라고 강조했다.
정해진 레시피를 따르기보다, 충분한 대화를 통해 개인의 취향과 이야기를 향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이곳의 가장 큰 차별점이다. 소규모 예약제로 운영돼 조향이 처음인 사람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운영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을 묻자, 한보람 대표는 망설임 없이 ‘노인 대상 수업’을 꼽았다. 경로당과 외곽 지역을 찾아가 진행한 향기 테라피 수업에서, 연세가 많아 설명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어르신이 주변의 도움을 받아 끝까지 작품을 완성하던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 사진 = 한보람 대표 출강 수업 |
“‘내 나이에도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하고 뿌듯해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처음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참여자가 점차 수업에 몰입하며 만족감을 표현하고, 간식을 챙겨주며 고마움을 전하던 순간도 그에게는 큰 힘이 됐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신 어르신들은 이런 경험을 접하기 더 어렵다”며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 대표는 ‘확장’보다는 ‘깊이’를 이야기했다. 화장품 제조·관리사 자격을 취득해 향 제품의 안전성과 전문성을 높이고, 공공기관과 지역 행사를 위한 맞춤 향 제품 제작도 단계적으로 준비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향으로 힐링할 수 있는, 어르신들도 편안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노인정이나 경로당 외에 갈 곳이 없다는 어르신들 말씀을 많이 듣는다”며 “향과 차, 대화가 있는 공간을 언젠가는 꼭 만들어보고 싶어요.”라며 미소지었다.
▲ 사진 = 서산 진로박람회 행사 참여 |
또한 조향사를 하나의 진로로 알리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젊은 친구들도 자격증을 통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분야라는 걸 소도시부터 알리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조향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보람 대표는 현실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향은 생각보다 어렵고, 단기간에 결과를 내기 힘든 분야”라며 “쉽게 성공한 사례만 보고 뛰어들기보다, 장기적으로 보고 공부하며 자기 색깔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조향사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끝까지 가겠다는 마음이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 사진 = 로더 라 비 퍼퓸 스튜디오 |
한보람 대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향수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향으로 남기는 공간입니다. 향이 일상 속 작은 위로가 되고,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았으면 좋겠어요.”
서산 원도심의 조용한 골목에서 시작된 이 향기는, 오늘도 누군가의 삶에 은은하게 스며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