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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뜯는 소가 똥 눈다.
긴 꼬리 쳐들고
푸짐하게 똥 눈다.
- 남호섭, <똥> 부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당신에게 자꾸 글을 쓰라고 명령을 내리는 그 근거를 캐 보세요. (…) 쓰는 일을 그만두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 있는지 본인 스스로 물어보세요.’
밥 먹고, 똥 누고, 잠을 자는 것.
이런 것들을 하지 못하게 하면,
우리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게 될 것이다.
(죽게 될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는?
안 써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융의 언어로 말하면,
‘글쓰기는 인간 정신 속에 숨겨진 원형적 형상의 자기 표현이다.’
융은 말한다.
‘아기에게 똥은 자신의 몸 안에서 만들어져 밖으로 나온 최초의 창조물이다. 이는 인간 정신에 내재된 무언가를 형상화하고자 하는 원형(Archetype)의 가장 원초적인 발현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성인은 그 에너지를 글, 그림, 사상이라는 고차원적인 형태로 승화시키는 것뿐이다.’
아기의 똥 누기와 어른의 글쓰기는 같은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글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똥을 누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글을 쓰며, 소가 되는 것이다.
풀 뜯는 소가 똥 눈다.
긴 꼬리 쳐들고
푸짐하게 똥 눈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