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잘사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돈을 벌고 도시에 좋은 집을 사고 명품으로 치장한다. 비싼 음식을 사 먹고 영양제로 건강을 챙긴다. 나중을 위해 보험은 들지만 그러나 정작 작별 인사는 준비하지 않는다. 마치 죽음은 일정 조율이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런 말을 해 왔다.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라.”
죽음은 늘 마지막 페이지에 밀려 있고, 삶은 끝이 없는 예습처럼 이어진다. 잘 산다는 건 오래 버티는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를 남기는 태도다. 사람은 태어날 때 울고 죽을 때 웃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반대로 산다. 잘 산 인생은 부자로 사는 게 아니라 후회가 적은 것이다. 남 탓을 줄이고 자기변명을 은퇴시키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집, 직함, 명예 등 내가 사라지면 같이 사라질 것들에게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좋은 옷, 좋은 물건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남에게 주면 좋은 선물이 되지만 내가 죽고 나면 무섭고 찝찝해서 아무도 그 물건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잘 산 사람이 잘 죽는다. 이미 내려놓는 연습이 끝났기 때문이다. 잘 죽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내가 없으면 안 돼”라는 말 대신 “그래도 세상은 잘 돌아가겠지”라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 겸손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작별 인사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죽는 사람은 삶을 끝내려 하지 않는다. 다만 삶이 끝날 때 저항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언젠가 이 지구에서 퇴장한다. 박수는 못 받아도 야유는 듣지 말고, 커튼콜은 없더라도 인사는 남기고 가자. 삶은 연습이 아니고 죽음은 리허설이 없다. 그래서 오늘만이 유일한 본공연이다. 사랑을 아끼지 말자. 미안함이 빚으로 남게 하지 말며 ‘나중에’라는 말은 쓰지 말자. 조급함을 내려놓고 사과를 내일로 미루지 말자. 삶을 충분히 살아본 사람의 자연스러운 마침표가 죽음이다. 잘 죽는 법은 마지막 순간에 배우는 게 아니다. 오늘 하루를 너무 악착같이 살지 않는 사람만이 끝에서 조용히 손을 놓을 수 있다.
그래서 잘 살기와 잘 죽기는 서로 다른 기술이 아니다. 잘 산 삶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 맞이한 죽음은 삶을 증명하지 않는다. 잘 죽는다는 건 미련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붙잡을 이유가 적다는 뜻이다. 그래서 삶에 과하게 매달리지 않은 사람만이 마지막 순간을 담담하게 통과할 수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은 없지만 죽음 앞에서 자기 삶을 변호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진정한 삶을 산 사람이다.
하루에 한 번, “이건 정말 내 선택이었나?”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남의 기대를 대신 살지 않는 연습은 가장 현실적인 준비다.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말해보자. “오늘까지는 괜찮았다.” 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조금은 잘 죽는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을 함부로 쓰지 않는 사람만이
마지막을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