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소중한 국보와 보물은 문화유산 그 자체보다,
그 곁에서 나눈 딸과의 시간이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면서 딸과의 대화는 항상 부족했다. 여느 일터처럼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도 거의 매일 야근이 어어졌고 회식도 잦았다. 늦은 시간에 퇴근해 딸 얼굴을 보면 행복했지만 대화를 나눌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를 당연한 것처럼 대하는 딸을 보면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딸과 함께할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어떤 방법으로 소통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깊게 고민하다 넌지시 물었다.
“딸, 아빠랑 여행 갈까? 전국 곳곳에 멋진 문화유산이 많단다. 어때?”
딸은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재미나게 놀만한 데도 있어요? 맛있는 것도 사주실 거죠? 그렇다면 가보죠, 뭐.”
아빠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딸의 배려일까?
그렇게 딸과의 주말여행이 시작되었다. 나는 답사할 문화유산에 대해, 특히 관련 스토리를 찾아 열심히 공부했고 현장에서는 가급적 딸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저녁에는 자연휴양림에서 함께 삼겹살도 굽고, 찌개도 끓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차 딸이 재미있어 했다. 특히 시큰둥하던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흥미를 나타냈다.
한 달에 2~3번은 답사 여행을 떠났다. 가끔은 회사에 휴가를 내고, 딸은 학교에 가족 동반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해 3~4일씩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15년 남짓 방방곡곡을 다녔고 수많은 문화유산을 마주했다. 딸도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되었고 이제는 제법 알은체한다.
에피소드 하나. 어느 날, 대학생이 된 딸이 신이 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방학 기간에 외국인 학생들을 몇 주간 교육하는 프로그램에 도우미 역할로 참여했다는 것이다. 일정 중 경복궁 등 유적지를 방문해야 하는데 담당 교수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솔할 수 없어 딸이 대신 그 역할을 맡았단다. 어릴 적 멋모르고 아빠의 설명을 듣던 일을 거울삼아 아주 쉽고 재미나게 우리 전통문화를 알려주었더니 반응이 뜨거웠다는 것이다.
지금은 딸도 직장인이 되어 함께 답사 여행을 할 기회가 많지 않지만 지난 15년 이상 주말마다 여행을 함께 다니며 문화유산에 대해 주고받던 대화들, 저녁이면 자연휴양림의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며 서로의 생각과 삶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내 인생의 소중한 국보와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동안 딸과 함께 답사했던 수많은 문화유산 중 나름대로 각 지역을 대표한다고 생각한 것들을 추려 설명하는 형식으로 꾸몄다. 글을 쓴 의도와 책의 구성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과 학부모, 일반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의도로 썼다.
둘째, 수도권에서 가까운 지역인 강원도의 문화유산을 소개했다. 순차적으로 충청도 등 타 지역의 문화유산도 소개할 예정이다.
셋째, 각 장마다 ‘자세히 알아보기’ 코너를 두어 문화유산과 관련해 알아 둘 필요가 있는 사항이나 특정 유형의 문화유산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다.
넷째, 책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찍은 것이며 부득이 직접 찍지 못한 사진은 출처를 밝혔다. 필자가 찍은 사진의 질이 낮더라도 이해를 바란다.
학창 시절 내내 아빠와 답사 여행을 함께 해준 딸이 고맙기 그지없다. 또 이를 계기로 돈독하고 애정 어린 부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해니야, 사랑한다! 그리고 항상 아빠를 위하는 마음, 고맙다!”
<작가소개>
지은이 나곽주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밥벌이를 위해 전공과 동떨어진 통신회사와 방송사에서 33년을 일하다 최근 정년퇴직했다. 하나뿐인 딸과 대화할 시간과 공간을 만들기 위해 15년 동안 함께 전국의 문화유산을 찾아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얻은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그것에 얽힌 스토리를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자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있다.
<이 책의 목차>
제1부. 철원, 양구
01. 불상이 스스로 찾아낸 안식처, 도피안사(到彼岸寺)
02. 전쟁의 상처를 안고 평화를 꿈꾸는 곳, 철원 노동당사
03. 호수에서 구해 낸 고인돌, 양구 고인돌공원
[자세히 알아보기] 한국의 고인돌
제2부. 고성, 속초
01. 두 번이나 도난당한 불사리, 건봉사(乾鳳寺)
02. 최고의 명산이 품은 절, 설악산 신흥사(神興寺)
[자세히 알아보기] 사찰 이름에 담긴 의미
제3부. 강릉, 양양
01. 풍광도, 스님 마음도 아름다운 절, 보현사(普賢寺)
02. 사굴산문의 본거지, 굴산사지(崛山寺址)
[자세히 알아보기] 구산선문(九山禪門)이란?
03. 영동지방에서 유행했던 석탑과 보살상, 신복사지(神福寺址)
04. 강릉 시민의 자부심, 강릉향교(江陵鄕校)
05. 조선 최고의 천재가 태어난 곳, 오죽헌(烏竹軒)
06.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살림집, 선교장(船橋莊)
07.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담긴 천하의 절경, 경포대(鏡浦臺)
08. 강릉의 수호신이 된 스님과 장군, 대관령 성황사와 산신당
09. 쌀뜨물이 흐르는 계곡, 선림원지(禪林院址)
[자세히 알아보기] 팔부신중(八部神衆)이란?
10. 신라 선종(禪宗)이 잉태된 곳, 진전사지(陳田寺址)
11. 의상대사와 관음보살의 만남, 낙산사(洛山寺)
제4부. 동해, 삼척
01. 입맛이 까다로운 부처님, 삼화사(三和寺)
02. 기암괴석을 병풍으로 삼은 정자, 해암정(海巖亭)
[자세히 알아보기] 창살의 종류
03. 기암괴석 위에 세운 누각, 죽서루(竹西樓)
제5부. 춘천, 홍천
01. 당나라 공주의 슬픈 사연이 얽힌 절, 청평사(淸平寺)
02. 강원 지역 문화유산의 보고, 국립춘천박물관
03. 통일신라 연화대좌 전시장, 물걸리사지(物傑里寺址)
04.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다양한 볼거리, 수타사(壽陀寺)
[자세히 알아보기] 사찰 전각의 이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
제6부. 원주, 횡성
01. 남한강변의 광활한 폐사지, 거돈사지(居頓寺址)
[자세히 알아보기] 비석의 구조
02. 우리나라에서 가장 화려한 승탑과 탑비, 법천사지(法泉寺址)
03. 왕건의 속내가 담긴 절터, 흥법사지(興法寺址)
04. 신자들의 피땀으로 세운 성당, 풍수원천주교회(豊水院天主敎會)
제7부. 평창, 영월
01. 고구려 양식의 석탑,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02. 신라 왕자와 조선 임금의 사연이 얽힌 절, 상원사(上院寺)
[자세히 알아보기] 한국 동종(銅鐘)
03. 신선이 노니는 곳에 자리 잡은 부처, 무릉리 마애여래좌상
04. 단종의 한이 서린 곳, 청령포(淸泠浦)와 장릉(莊陵)
제8부. 정선, 태백
01. 부처의 사리를 모신 독특한 탑, 정암사(淨岩寺)
[자세히 알아보기] 적멸보궁(寂滅寶宮)이란?
02. 민족의 성지, 태백산(太白山)
<이 책 본문 中에서>
“눈여겨볼 것은 계단의 소맷돌과 기단이다. 좌우 소맷돌 아랫부분에 용머리를 세밀하고도 뚜렷하게 조각했다. 이는 극락보전을 아미타부처가 중생을 서방극락정토로 인도할 때 태우는 배인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소맷돌 바깥면에는 도깨비 얼굴을 닮은 귀면과 삼태극 등의 무늬를 조각했다. 기단의 모퉁이에는 장대석 대신 별도의 돌을 짜 맞추고 거기에 모란꽃과 사자를 조각했다. 이러한 사례는 본 적이 없어 매우 특이하다.”
“삼화사 아랫마을에 사는 한 농부의 아내가 부처님을 찾아와 온 마을에 전염병이 창궐해 남편이며 자식이 다 죽게 생겼으니 빨리 낫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그녀가 지극정성으로 빌어도 전염병은 좀처럼 퇴치되지 않았다. 아낙은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부처가 야속하기도 했지만 ‘내 정성이 모자란 것인가’라고 생각했다. 골똘히 생각하던 아낙은 평소에 부처님께 공양하던 밥이나 과일 대신 무언가 새로운 음식을 올리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마치 현대의 이모티콘처럼 얼굴이 석상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얼굴 표정, 외모, 자세 등도 각양각색이다. 가사를 머리부터 뒤집어쓰거나 어깨에 걸친 나한, 모자를 쓰거나 민머리를 한 나한, 환하게 웃거나 미소를 띤 나한, 얼굴을 찡그리거나 명상에 잠긴 듯한 나한, 고개를 들거나 숙인 나한,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옆을 보는 나한, 얼굴에 주름이 잡히거나 주먹코를 지닌 나한 등은 우리네 얼굴과 마음을 비춰보는 듯하다. 오백나한과 함께하는 이 순간은 일상사를 잊고 고요히 나에게로 떠나는 여정이 된다.”
<추천사>
나곽주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강원도 지역의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따라 걷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독자들이 마치 작가와 딸이 지나온 시간들을 함께 걷고 있다는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 이 책은 강원도 곳곳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들을 소개하는 책이지만, 그보다 앞서 한 아버지가 딸과 나란히 서기 위해 선택한 소통의 기록이다. 작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점점 줄어드는 대화를 붙잡고 싶었고, 그 방법을 여행에서, 그중에서도 문화유산 답사에서 찾았다. “딸, 아빠랑 여행 갈까?”라는 머리말의 한 문장으로 이 책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도피안사에 깃든 불상의 사연, 철원 노동당사에 남은 전쟁의 흔적, 양구 고인돌공원에 옮겨진 돌무덤의 시간들은 부녀의 대화와 질문,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는 딸의 시선과 이해를 통해 그 의미와 가치를 찾아간다. 작가는 매번 딸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그 과정에서 강원도 지역의 문화유산은 시험을 위한 하나의 지식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스며든다.
특히 인상 깊은 점은 작가의 문화유산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다. 건봉사에 봉안된 불사리의 이동과 도난, 반환의 과정이나 신흥사 영산회상도가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는 대목에서는 감정의 과잉을 삼간다. 대신 그 시간을 견뎌온 문화유산의 무게를 차분히 전하고 있다.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더욱 가치가 있다”라는 이 문장은 역사와 기록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의 결에 가깝다. 결국 독자는 문화유산들이 사라지고 옮겨지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들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되새기게 된다.
또한 중간중간 보충하여 설명하는 ‘자세히 알아보기’ 코너도 이 책의 흐름을 부드럽게 받쳐준다. 고인돌의 형식과 의미, 구산선문에 대한 설명, 사찰 이름에 담긴 뜻까지 독자가 한 번쯤 품었을 질문을 놓치지 않는다. 설명은 친절하지만 가볍지 않고, 깊이는 있으되 부담스럽지 않다. 학생과 학부모, 일반 독자들을 함께 떠올렸다는 작가의 의도가 책 전체에 고르게 배어 있다.
무엇보다 이 책에는 시간이 쌓여 있다. 한 달에 두세 번씩 이어진 답사, 때로는 휴가를 내어 며칠씩 떠났던 여행, 저녁이면 자연휴양림에서 별을 보며 나눈 이야기들… 그렇게 흘러간 15년의 시간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작가가 말한 “내 인생의 소중한 국보와 보물”은 문화유산 그 자체보다, 그 곁에서 나눈 딸과의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함께 걷고, 묻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의 책이다. 아이와 부모가 나란히 걷는 길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혹은 누군가와 시간을 나누는 방식이 조금은 서툴게 느껴지는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서가 된다.
(나곽주 지음 / 보민출판사 펴냄 / 344쪽 / 신국판형(152*225mm) / 값 20,000원)
